[사설]추경이든, 슈퍼예산이든 ‘헬리콥터에서 돈 뿌리기’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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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어제 연구기관장과의 간담회에서 “적극적 재정보강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 중이며 적당한 조합을 만들어 발표하겠다”는 말로 추경 편성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추경은 법적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던 유 부총리가 결국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추경에다 각종 기금, 공공기관 자금, 정부 출연금까지 묶어 최대한 재정을 풀기로 한 모양이다.

추경의 근거를 찾자면 국가재정법 89조에 명시된 3가지 요건 중 ‘대량 실업’에 해당한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될 경우 실직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런 우려가 어제오늘 제기된 문제가 아닌데 정부가 갑자기 말을 바꾸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과거 추경 편성 때마다 정부는 일단 부인했다가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어쩔 수 없이 ‘결단’하는 식의 시나리오가 이번에도 반복될 공산이 크다. 정부가 국가채무를 늘리지 않기 위해 끝까지 고민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한 쇼는 아닌가.

경기대책으로 추경만이 정답일 순 없다. 정부는 지난해도 12조 원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극복 추경을 편성하면서 성장률이 3%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2.6%에 그쳤다. 추경이라는 이름으로 10조 원대의 나랏빚을 내면 보통 성장률이 0.3∼0.5%포인트 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돈을 풀어도 돈이 돌지 않는 지금 같은 현실에서 성장률 전망치는 의미가 없다.

그래도 추경을 해야겠다면 예산 용도를 정밀하게 설계해야만 한다. 지난해는 세수 부족이 심각했기 때문에 사용처를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지만 올해는 세금이 잘 걷히기 때문에 전체 추경자금을 새로운 데 써야 한다. 지출계획을 민생 안정, 경기 회복 등으로 두루뭉술하게 짜면 눈먼 돈으로 전락할 수 있다.

성장률에 목을 맨 정부로서는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예산을 쓰고 싶을 것이다. 상품권 같은 쿠폰을 나눠주면 소비 진작 효과를 낼 수는 있다. 하지만 성장률을 억지로 높이는 것보다 글로벌 격변기를 뚫고 나갈 만큼 체력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다. 기획재정부는 추경이든 슈퍼예산이든 국비 지출의 효과를 사업별로 따져 가계부를 내놔야 한다. 그것이 혈세를 더 부담해야 하는 국민에 대한 예의다.
#유일호#경제부총리#추가경정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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