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달라진 북핵,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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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정치부 차장
김영식 정치부 차장
적어도 아버지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핵문제를 협상하려는 시늉이라도 했다. 뒤통수를 치기는 했지만 6자회담에 참여하고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은 처음부터 달랐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소위 유학 물을 먹었다. 그래서 아버지와는 다른 행보를 나타낼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모습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핵문제만큼은 아버지나 할아버지 김일성보다 더 거침없고 빠른 도발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북한은 헌법에 핵보유국이라고 명시하고 핵·경제 병진노선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제시했다. 북한은 급기야 6일 ‘시험용 수소탄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4차 핵실험 실시를 공개했다. 성공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북한이 수소를 이용한 증폭핵분열탄 실험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수소탄 개발 초기 단계의 핵실험은 북한의 핵문제가 이제 질적으로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과거와 다른, 악화되는 북한의 핵개발에 맞서기 위해선 대응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정작 걱정되는 대목은 정부의 대응에 이런 심각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실험을 규탄하고, 핵 폐기를 요구하고, 추가 제재를 언급하고, 어떤 도발에도 대비한다는 게 이날 발표한 한국 정부 성명의 요지다. 북핵 문제를 담당했던 전직 고위급 외교관은 “‘수소탄 실험’으로 북핵 문제가 질적으로 달라진 상황이라면 정부의 대응도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 하지만 정부 성명에선 옛날 대응법의 날짜만 고쳐 쓴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래선 제대로 된 대응이 나오기 어렵다. 북한의 핵실험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가 외면했을 뿐이다. 북한이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전후로 핵실험을 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만 여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는 동안 북핵 문제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실체도 없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를 회담 재개 조건을 나열한 ‘코리안 포뮬러’에 매달려 시간만 보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는 북한에 잘못된 신호만 보냈다. 북핵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빠진 가운데 거론된 남북관계 개선, 흡수통일 의사가 없다고 안심시키는 데 방점을 둔 지난해 10월 류윈산(劉雲山)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 노력. 오히려 김정은이 핵실험을 하더라도 북한이 크게 힘들어지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만들어 준 건 아닐까.

북핵의 질적 수준이 달라진 만큼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은 충분한 준비 과정을 거치지 않은 ‘통일 대박’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통일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수사적 접근은 골치 아픈 핵문제의 도피처가 통일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놓은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젠 북한 핵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다룰 시점이 됐다.

북한의 이번 4차 핵실험은 물려받은 재산으로는 국가 운영의 답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김정은이 협상을 위해 큰 베팅을 한 것일 수 있다. 미국도 대선을 앞두고 최소한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정부의 외교력은 이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북한에 핵실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하면서도, 핵개발을 단념하게 할 새로운 틀의 북핵 접근법이 필요하다. 그냥 방치하다간 우리가 북한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김영식 정치부 차장 spear@donga.com
#북한 핵실험#김정은#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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