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규제 숫자 급급… 우선순위 뒷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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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총량제’ 왜 실패했나… 큰 규제 만들며 사소한 규제 폐지
법적근거 없어 부처들 버티기 일관… ‘의원입법’ 통제 어려운 것도 문제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는 2003년 11월 ‘규제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규제총량제 도입을 선언했다. 2003년 말 기준으로 부처별 총량을 정한 뒤 2004년부터 규제 하나가 늘면 다른 규제 하나를 없애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규개위는 부처별 규제총량을 정하는 데 실패하고 2005년 규제총량제 운영을 ‘의무’에서 ‘자율’로 변경했다. 2006년에는 ‘필요한 규제를 도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총량제를 공식 폐기했다. 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국무조정실 규제총괄과장이었던 오균 대통령국정과제비서관은 “검토할 때부터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규제를 개수로 관리하다 보니 큰 규제를 하나 만드는 대신 사소한 규제를 하나 없애며 ‘하는 척’만 하는 경우가 생겼다는 것. 규제 폐지만큼이나 중요한 규제 완화를 유도할 인센티브도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부처의 반발이었다. 당시 관여했던 한 교수는 “법적인 근거가 없다 보니 부처를 압박할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2004년 초 국무조정실과 규개위는 규제개혁추진지침을 만들고 ‘총량을 정하라’며 부처를 압박했지만 힘 있는 부처들은 꿈쩍도 안 했다. 자료를 요구해도 ‘검토 중’이라며 시간만 끌고 회신도 안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결국 규개위는 ‘2004년 3월까지 부처별 규제총량을 정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의원입법이나 청부입법(정부 부처들이 의원입법 형식을 빌리는 것) 방식의 새 규제 도입을 막지 못한 것도 실패 원인 중 하나였다. 오 비서관은 “규제 개혁에서 의원입법은 영원한 숙제”라며 “당시에도 논의는 있었지만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부처들은 의원입법으로 만들어진 규제 수백 건을 의도적으로 규개위에 등록하지 않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결국 규제총량제를 도입한 2004년 규제 239건이 신설되는 동안 폐지된 규제는 80건에 그쳤다. 2005년에도 286건이 생기는 동안 74건만 사라지며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정부는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행정규제기본법을 고쳐 법적 근거를 만들고 △개수 대신 가중치를 기준으로 해 실효성을 확보하면서 △의원입법으로 만들어진 규제도 포함시키되 여당을 통해 국회의 자정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에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종한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영국의 경우 ‘원인 원아웃(One In One Out·1개를 신설하면 1개를 폐지한다는 뜻) 제도를 통해 규제가 신설되면 증가하는 비용만큼 다른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게 한다. 규제당 비용편익분석이 잘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병선 전 규제개혁위원장은 “사고가 터졌는데 정부가 가만히 있으면 시민단체에서 ‘총량제 핑계로 일을 안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며 “국회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지 않으면 의원입법도 통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최선호 인턴기자 경희대 영미어학부 4학년
#규제총량제#규제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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