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4년간 ‘쩐의 전쟁’ 끝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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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숙청으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얻은 것은 권력의 공고화만이 아니다. 후계자 내정 때부터 지금까지 김정은의 권력 장악 과정은 ‘자금의 장악’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성택 숙청을 통해 북한의 모든 자금과 이권은 김정은을 중심으로 돌게 됐다. 1990년대 중반 북한 경제 붕괴를 계기로 시작된 ‘쩐(錢)의 춘추전국시대’는 2013년 김정은의 천하통일로 막을 내리게 된 셈이다.

○ 심복 내세워 빼앗은 자금줄

2008년 여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정일은 깨어나자마자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군부 장악부터 맡겼다. 당시 북한에는 김정일의 자금인 ‘당 자금’과 노동당 작전부, 군부로 대변되는 3개의 큰 자금원이 존재했다. 김정은은 이 가운데 작전부 자금줄을 챙기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해외 공작을 위해 수많은 해외 기지를 두고 있던 작전부는 마약과 위조지폐, 무기 밀매로 막대한 불법 외화를 벌어들였다. 1억6000만 달러(약 1682억 원)어치의 마약이 적발돼 2006년 호주에서 억류된 ‘봉수호’ 사건도 작전부가 벌인 일이었다.

김정은은 노동당 작전부와 조사부(35실), 군 정찰국을 통합해 정찰총국을 만드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정찰총국장에 심복인 김영철 상장을 임명했다. 자연히 작전부 자금은 김정은의 손에 들어왔고 실세였던 오극렬 전 작전부장은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됐다. 2011년 김정일 사망으로 중앙당 38호, 39호실 등 전통적인 김정일 비자금은 자연스럽게 김정은에게 승계됐다.

김정은의 두 번째 칼날은 군부로 향했다. 2012년 4월 최룡해를 군 총정치국장으로 임명한 뒤 군부의 모든 자금줄을 내놓으라고 지시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선군정치를 내세운 김정일은 군부가 스스로 외화를 벌어 군을 유지하는 것을 용인했다. 이후 군부는 셀 수 없이 많은 ‘기지’라는 이름의 외화벌이 회사를 차려 수산물과 광물자원 등을 외국에 수출해 돈을 벌었다. 군단급 수산기지에는 50여 척의 선박이 소속돼 있을 정도였다. 최룡해는 총정치국 산하에 있는 모든 회사를 김정은에게 바쳐 솔선수범을 보였다.

○ 숙청으로 챙긴 장성택의 자금줄

같은 기간 김정은의 후견인이던 장성택도 권력을 이용해 각종 이권을 빠르게 장악했다. 수도 건설을 책임진 장성택은 자금 마련 명목으로 건설자재 회사, 광물자원 회사 등에 심복을 심었다. 수출과 수입 시세 조작만으로도 얼마든지 큰돈을 빼돌릴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장성택 라인은 북한의 석유사업도 손에 넣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북한에서 석유 수입은 막대한 차익을 거둘 수 있는 사업. 처형된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석유사업 책임자였다. 그는 장성택의 핵심 비자금 관리인이기도 했다. 장성택은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을 끌어들여 매년 수억 달러의 수익이 창출되는 휴대전화 사업도 손에 넣었다. 행정부 산하 보위부와 보안서의 알짜 이권사업도 장 씨의 손에 넘어갔다. 이런 방식으로 장성택은 수십억 달러를 주무를 수 있는 건설, 통신, 광업, 해외자금 유치, 대중(對中) 교역 등 각종 이권사업을 손에 넣었다. 사업 명목은 당 자금이나 경제건설 자금 충당이었지만 실제 돈을 주무르는 사람들은 장성택의 심복들이었다.

장성택 숙청으로 그가 키워 온 이권사업도 일거에 김정은 수중에 들어가게 됐다. 북한이 발표한 장성택의 죄목에는 “장성택 일당은 교묘한 방법으로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주요한 몫을 담당한 부문과 단위들을 걷어쥐고 내각을 비롯한 경제 지도기관들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국가재정 관리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라는 내용도 있다. 이번 숙청의 중요한 이유가 장성택 라인이 차지한 이권 때문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자금줄#북한#장성택 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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