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진출 꿈위해 입학했는데…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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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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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 ‘유엔평화대학 아태센터 사기극’에 충격

외국의 유명 회사를 가정하자. 이 회사의 제품이 자기 나라에서 또는 국제적으로 높은 품질을 인정받아도 한국에서 영업하려면 한국의 법과 절차를 지켜야 한다. 직영을 하든, 대리점을 내든 마찬가지다. 유엔평화대학 아태센터는 이러지 않았다. 유엔이라는 국제적 권위를 빌려 한국에서 교육과정을 운영했다.

유엔평화대학 아태센터는 한국 정부가 ‘평화대학 설립을 위한 국제협정 및 평화대학 헌장’에 2010년 6월 가입한 사실을 설립 근거로 내세웠다. 국제조약이 근거이니 교육 당국의 인허가를 따로 받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다. 이런 점을 들어 센터는 자체 학위 과정을 이수하면 유엔이 인정하는 외국 학위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또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 같은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안내했다.

그럴듯한 말이어서 대부분의 학생이 넘어갔다. 취재기자도 헷갈렸던 부분이다. 아태센터의 해명을 전했더니 외교부와 교육부 관계자들은 말이 안 된다고 분명히 밝혔다.

○ 국제조약이 적용되지 않는 민간기관

한국 정부가 평화대학 설립에 관한 협정에 가입한 것은 사실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아태센터는 이 협정과 무관하다. 유엔총회 결의(1980년)를 통해 나온 협정은 코스타리카에 들어선 유엔평화대학의 본부에만 적용된다는 뜻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평화교육 활동을 지지한다는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가입했을 뿐이지, 아태센터의 한국 유치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협정에 가입할 당시 정부가 아태센터를 유치하겠다거나 관련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아예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아태센터는 유엔평화대학 코스타리카 본부와 합의각서(MOA)를 맺으면서 문을 열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민간 재단이 유엔평화대학과 합의를 해서 자체적으로 민간 대학을 설립했다. 정부는 전혀 관계하지 않은 일이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대학이나 대학원 과정을 운영하려면, 즉 고등교육기관이 되려면 교육 당국의 인허가가 필수다. 아태센터는 여기에 필요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국제조약인 평화대학 협정에 가입했으니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된다는 논리에서다. 아태센터는 “별도의 조약이 없을 때 국내법을 적용받는다. 한국 정부가 유엔평화대학 협정에 가입했으니 교육부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아태센터는 민간단체가 세운 민간학교인 만큼, 국내의 교육 관련 법을 모두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센터 측에 교육 관련 법령을 지켜서 그에 따라 법적 지위를 충족시킨 뒤 그 범위 내에서 활동하는 것은 좋다고 했다. 최소한의 조건을 못 맞춰서 교육부의 인가를 못 받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유피스AP재단에는 현재 6명의 이사가 등록돼 있다. 이사 중 한 명은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법적으로 (아태센터가) 분명한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은 알고 있다. 교육부의 일반적인 기준에 따르면 폐쇄하는 것이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 학기당 등록금이 700만∼800만 원대

아태센터에는 대학을 졸업한 대학원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다닌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유엔총회가 설립한 인재 양성의 전당’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학교를 선택했다.

A 씨는 “유엔평화대학의 지위에 대해 센터가 명확하게 얘길 해 주지 않았다. 정식으로 학위를 주는 학교라고 교수가 얘기해 철석같이 믿었는데, 불법 운영이 사실이라면 사기를 당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곳의 등록금은 첫 학기에 석사 과정은 705만6000원, 석·박사 통합과정엔 820만 원이다. B 씨는 “입학해 보니 고액의 등록금에 상응하는 교육환경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계속 다녀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아 자퇴를 고려했는데 등록금을 반환해 주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의 여러 국제대학원을 물색하다 올해부터 아태센터를 다니게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유엔에 진출하려는 꿈을 갖고 학문적 기초를 닦기 위해서였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껴 선택한 곳인데 매우 실망스럽다.” C 씨 역시 센터가 법적인 기준을 충족하지 않은 채 운영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학생들은 학교가 폐쇄 위기에 처하자 한편으로는 걱정하고 한편으로는 반발하는 분위기다. 재단이 학교를 잘못 운영한 것에 대해서 교육부의 제재 조치가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정부가 피해자인 학생을 구제하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얘기다.

D 씨는 “학생들은 모두 평화와 인권에 대해 배우며 유엔이나 국제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할 꿈을 품고 수업을 받아 온 젊은이들이다. 새로운 재단을 설립하든지, 제대로 된 학교를 새로 만들든지 해서라도 학생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유엔평화대학 아시아태평양센터 ::

외교부에 등록한 유피스 AP재단이 설립해 운영하는 교육기관. 유피스 아태센터로 줄여 부른다. AP재단이 2009년 코스타리카의 유피스 본부와 합의각서(MOA)를 체결하면서 이듬해 문을 열었다. 현재 평화와 개발, 환경과 녹색성장 등 2개 분야에 석·박사과정을 운영한다.

이샘물·김도형 기자 evey@donga.com
#유엔평화대학 아태센터#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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