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인사검증을 ‘신상털기’라며 화풀이… 일부언론 동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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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자 검증 무력화시키려는 ‘위험한 손’

인수위 간사단 회의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간사단 회의에서 인수위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임종훈 행정실장, 강석훈 위원, 박효종 정무분과 간사, 유민봉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 김장수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인수위사진기자단
인수위 간사단 회의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간사단 회의에서 인수위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임종훈 행정실장, 강석훈 위원, 박효종 정무분과 간사, 유민봉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 김장수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인수위사진기자단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국무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뒤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상한 기류가 고개를 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주변에서 ‘신상 털기’라는 자극적 표현까지 써 가며 공직 후보자에 대한 언론과 야당의 검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달아 나오고 있고, 일부 언론은 그 주장을 주요 뉴스로 전하면서 ‘인사검증 무력화 시도’에 동조하고 있다.

특히 한 언론사는 낙마한 김 후보자가 언론 검증에 대해 털어놓은 불만을 자극적인 제목으로 전달하면서 마치 검증 과정이 부도덕했다는 듯한 인상을 주는 보도를 했다.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언론 탓만 하는 정치권의 고질적 병폐가 재발되고 이에 일부 언론이 동조하는 양상이다.

주요 공직 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검증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이며, 언론 본연의 사명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움직임이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 의해 벌어지는 데 대해 언론학자들은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 언론의 공직자 검증이 ‘신상 털기’?

언론의 공직자 검증 취재를 고의적으로 특정인을 비방, 중상해서 상처를 줄 목적으로 온갖 사생활 정보를 캐내 유출시키는 일부 누리꾼의 ‘신상 털기’와 동일시하는 일부 정치인의 인식은 위험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언론이 의도적으로 후보자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만신창이로 만든다’ ‘이런 식으로 과거의 관행을 다 문제 삼으면 어떤 성인(聖人)이라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논리로 공직자 검증을 무력화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기초적인 사실 자체를 호도하는 주장이다. 대다수 정통 언론의 후보자 검증은 취재윤리를 준수하면서 진행돼 왔다. 기자들이 많은 현장을 직접 가 보고 관련자들을 어렵게 설득해서 만나는 과정을 통해 하나하나 팩트를 모아 가는 매우 노동집약적인 작업이다. 김용준 후보자에 대한 검증 보도를 주도한 동아일보-채널A 공동취재팀이 가족과 지인을 취재할 때는 취재원의 정신적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예의를 지키고 취재하려는 바를 명확히 밝히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검증 과정에서 언론이 기준으로 삼은 잣대도 ‘성인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도덕성’이 아니었다. 동아일보-채널A 공동취재팀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김용준 총리 후보자 검증을 주도하면서 주로 들여다본 것은 병역의무 이행 여부, 투기, 공적 의무와 일반시민에게도 요구되는 법 준수 여부였다.

일부 정치인은 언론의 검증 취재를 음모론적 시각으로 보면서 폄훼하려고 시도했다. 동아일보와 채널A의 검증 관련 단독보도에 대해 일부 정치인은 “동아일보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검증 취재는 정치와는 무관한 사회부의 현장기자들이 팀을 꾸려 스스로 취재 계획을 세우고 결과물을 내는 시스템이라는 기초적 사실관계조차 모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언론의 인사 검증을 비난한 정치권의 반응은 ‘이중적인 말 바꾸기’라고 지적한다.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은 “언론이 부실한 검증 시스템의 빈 공간을 메워줄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해 ‘검증이 과도했다’고 불만을 표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 따른 반응”이라고 말했다.

○ 일부 언론의 ‘검증 무력화’ 동조

헌재 소장과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 검증 과정에서 한 언론사는 인사 검증을 문제 삼는 여권의 움직임을 연일 크게 전하면서도 정작 별다른 검증 보도를 하지 않았다. 총리 후보 인선이 발표되자 후보자에 대한 미담성 기사를 많이 내보냈던 이 언론사는 김 위원장이 총리 후보직을 사퇴한 29일 이후 인사 검증 방식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인격을 최소한이라도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로 비판하는 풍토를”, 朴당선인 “40년 전 일도 요즘 잣대로 재단/ 청문회서 어릴 적 오줌싸개 얘기도 나올라”, “손주 미행당하고 가족 졸도…가정 파탄 직전” 등이었다. 기사의 제목만 보면 인사검증이 마치 사회악처럼 느껴질 정도다. 반면 이 언론사는 지난 대선 기간 안철수 전 대선후보 등 야권 인사에 대해서는 철저한 검증을 촉구했었다.

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김 위원장은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이 언론사의 독자권익보호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지난해 이 언론사와의 퇴임 인터뷰에서 “요즘은 언론이 너무 미지근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언론의 검증을 문제화, 무력화하려는 것은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의 기능 자체를 잘못 이해한 것이며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언론은 의혹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뭐든 밝혀낼 임무가 있다”며 “언론사가 그 임무를 스스로 비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채널A 영상] 박근혜 ‘신상털기’ 비판…8년 전엔 ‘엄격 검증’ 주장


#인수위#인사검증#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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