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를 리모델링하자]비서동 붕괴위험 판정 받아도… 여야, 보수공사 예산 퇴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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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모델링 가는길 2가지 변수… 예산과 경호

관저로 퇴근하는 李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일과를 마친 뒤 청와대 관저로 들어가고 있다. 김윤옥 여사가 문을 열고 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관저로 퇴근하는 李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일과를 마친 뒤 청와대 관저로 들어가고 있다. 김윤옥 여사가 문을 열고 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얼마 전 청와대 비서동 중 한 곳인 위민3관 1층 화장실 입구에 반사경이 설치됐다. 화장실을 나가기 전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용도다. 사연은 이렇다. 가뜩이나 비좁은 화장실 앞 복도에 얼마 전 대형 통신장비가 들어섰다. 사무실 안에 둘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이 장비가 화장실 입구의 시야를 가렸고, 화장실을 출입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부딪치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은 권위적으로 설계돼 공간 활용도가 떨어지는 반면 본관에서 500m 떨어진 비서동은 제대로 업무를 보기 어려울 만큼 열악하다. 역대 청와대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이 포기했다. 전문가들은 그 본질적 이유를 예산과 경호 문제에서 찾고 있다.

○ 청와대 예산이라면 일단 깎고 보는 국회

이명박 정부도 출범 초 로드맵을 짜고 청와대 공간 개조를 시도했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넘어가자 논의가 흐지부지되기 시작했다. 1차 공사에 약 200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됐는데 청와대 내 누구도 국회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장다사로 대통령총무기획관이 “세종시 이전으로 정부서울청사에 빈 공간이 생기니 참모들을 임시로 옮긴 뒤 비서동 보수공사만 진행하겠다”며 예산을 요청했지만 여야 모두 차가운 반응이었다.

실제 정권을 불문하고 청와대 관련 예산은 깎이기 일쑤다. 2013년 청와대 예산도 당초 정부가 제출한 1644억 원에서 25억 원 깎인 1619억 원이 최종 배정됐다. 1년 전인 2012년 예산보다 60억 원 줄었다.

이한구 국회 운영위원장 겸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청와대 리모델링에 대해 “경제가 어려운데 청와대가 무슨 돈을 쓰느냐. 쓸데없이 돈을 쓰면 안 된다. 건물을 새로 짓는다고 소통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정권이 바뀌어 집주인이 집을 고치는 걸 반대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밀봉-불통 인사’의 대명사가 된 박근혜 당선인이 소통과 변화를 위한 신호탄이 아니라 보여주기의 일환으로 청와대 리모델링을 추진한다면 강하게 반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새 정부 임기 초에 과감하게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통령학 전문가인 최평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총공사비만 2000억 원이 넘는 제2의원회관을 지은 국회가 무슨 근거로 청와대 리모델링을 위한 논의조차 막을 수 있느냐”며 “박 당선인이 임기 초에 중장기적 어젠다로 설정하고 과감하게 국회와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임기 첫해에 로드맵을 짜서 국민에게 보고하고 끈질기게 이해를 구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또 다른 복병, 경호 문제

청와대 리모델링을 위해서는 경호 체계 수정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청와대 내 각종 동선은 대통령 경호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만큼 공간 재배치는 결국 경호 체계 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영원한 ‘늘공(늘 공무원)’이자 여전히 만만치 않은 목소리를 내는 경호처가 자신들의 역할 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라는 것.

경호처는 군사정권 시절에 비해서는 확연히 달라지긴 했지만 경호 동선 조정 등에 대해선 여전히 민감해하고 가끔 다른 참모 조직과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현 정부 초 벌어진 청와대 업무 동선과 경호 체계와 관련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된다. 이 대통령이 대선 후 당선인 집무실에서 몇몇 핵심 참모로부터 기밀사항을 보고받고 있는데 경호관이 문 앞에 버티고 있었다. 보고하던 참모가 “자리를 잠시 비켜 달라”고 하자 경호관은 “수칙상 나갈 수 없다”고 했고 실랑이 끝에 경호관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 전까지 경호실이던 명칭이 경호처로 바뀌었다는 것. 당시 실랑이를 벌였던 참모는 “경호관들이 충성심이 강하고 업무 수행력도 좋지만 청와대 공간을 유기적으로 소통형 구조로 바꾸려면 경호처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경호 업무를 담당했던 장기붕 대경대 경호학과 교수는 “본관에 일부 참모가 들어가거나 본관 바로 옆에 비서동을 신축해도 이젠 경호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을 정도로 청와대 경호 능력이 업그레이드됐다”며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청와대 리모델링을 위해 경호의 강약이나 동선을 미세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예산이나 경호문제를 넘어 실질적인 청와대 리모델링을 실현하기 위해선 소통형 업무공간에 대한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가장 중요한 셈이다. 최평길 교수는 “대통령이 임기 중반 들어 지지율이 하락하면 소통은커녕 참모들도 보기 싫을 수 있다”며 “임기 초에 의지를 갖고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헌·고성호 기자 ddr@donga.com
#청와대#리모델링#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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