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상 첫 재외국민투표 시작… “억울하게 가신 희생자 몫까지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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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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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운명의 한국인 전범 이학래 옹, 생애 첫 한표 행사

생애 첫 투표에 나서는 이학래 옹은 27일 일본 도쿄 이타바시 구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에서 탄탄한 방위정책을 갖고 있는 정당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생애 첫 투표에 나서는 이학래 옹은 27일 일본 도쿄 이타바시 구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에서 탄탄한 방위정책을 갖고 있는 정당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기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지. 감개무량하다고 할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방패막이로 내몰린 ‘죄’로 전쟁이 끝난 뒤에도 억울한 삶을 살아야 했던 한국인 B·C급 전범 이학래 옹(87). 4·11총선 재외부재자투표를 하루 앞둔 27일 그는 험난했던 지난 세월이 떠오르는 듯 두 눈을 꼭 감았다. 연합군 포로 학대 혐의로 내려진 사형선고, 지옥 같았던 11년간의 감옥생활, 출소 이후 일본 사회의 차별과 고국의 무관심….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최악의 인생을 살아온 그가 부인 강복순 씨(77)와 함께 일본 도쿄 한국대사관에서 첫 투표를 한다. 이 옹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에서건 한국에서건 태어나 처음 하는 투표”라며 “먼저 돌아가신 억울한 한국인 전범들의 몫까지 대신해 투표하겠다”고 말했다. 이 옹은 거동이 자유롭지 않았다. 허리와 다리 통증으로 일어섰다 앉을 때마다 신음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옹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태국∼미얀마 철도 건설현장에 끌려갔다. 이때 연합군 포로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군사재판에서 ‘B·C급 전범’ 판결을 받았고 사형이 선고됐다.

“당시만 해도 조선의 젊은이들은 군인으로 징병되든 노동자로 잡혀가든 어디로든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2년만 포로감시원을 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게 영영 고국을 떠나는 마지막 길이 돼 버렸지.”

이 옹은 다행히 감형돼 태국과 도쿄의 형무소에서 11년을 복역한 뒤 1957년 풀려났지만 자유의 몸이 아니었다. 일본 정부는 자국 전범에게는 원호금 명목으로 보조금을 지불하면서도 자신들의 죄를 대신 씌운 한국인들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외면했다. 이 옹은 “당시 전범 판결을 받은 사람이 한국에 가면 친일파라는 누명을 씌워 징역을 살린다는 소문이 있어 일본에 눌러앉았다”며 “우리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고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이 옹은 출소 직후 일본에 남은 한국인 전범과 함께 ‘동진(同進)회’라는 모임을 꾸려 반세기가 넘도록 일본 정부를 상대로 명예회복과 보상금 지급을 호소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나마 한국 정부가 2006년 이들을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해 절반의 명예를 되찾았다. 출범 당시 50명이었던 회원은 현재 5명만 생존해 있다.

이 옹은 “이제라도 한국인으로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 다행”이라면서도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동진회의 활동을 지지하는 정당에 투표하기 위해 지난주 각당 대표 앞으로 공개질의서를 보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 옹은 “투표를 하고 싶어도 정당에 대한 구체적 정보나 홍보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씁쓸해했다.

이번 4·11총선에서 헌정 사상 처음 도입된 재외국민투표는 28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107개국 158개 재외투표소에서 실시된다.

:: B·C급 전범 ::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열린 군사재판에서 전쟁 중 범죄(B급)나 포로학대 등 인도적 범죄(C급) 혐의로 전범 판결을 받은 사람. A급은 도조 히데키 일본군 육군대장과 같은 전쟁 주모자급이다. 한국인은 총 148명이 B·C급 판결을 받았고 이 중 23명이 사형됐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4·11총선#일본#재외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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