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폐합 부처 분리” “조직 신설 약속”… 여야, 선거철 이익단체 눈치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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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부 부활-中企部 신설 등 정치권 포퓰리즘 약속 경쟁

“중소기업부 신설은 우리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차기 정부에서 가능할 겁니다. 이미 여당과 야당 모두 약속을 했습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지난달 17일 ‘2012년 주요 사업계획 및 정책과제’의 하나로 중소기업부 신설을 제시하며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중소기업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여야가 부처를 신설해 주겠다며 경쟁적으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정부에서 통폐합된 정부 부처의 분리 또는 신설 움직임이 일고 있다. 표(票)를 의식한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이익단체의 목소리에 맞장구를 쳐주며 대대적인 정부조직 개편 논리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19일 “집권하면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를 부활하겠다”고 밝혔다. 민주통합당도 “집권하면 (과거 정통부 격인) 정보미디어부를 신설하겠다”는 약속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다.

박천오 명지대 교수(행정학)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50여 차례 정부조직을 개편했지만 이에 따른 효과 측정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정치 논리에 따라서만 조직을 바꿨던 악순환이 이번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 봇물 터진 부처 신설 요구


정부 교체시기를 앞두고 이익단체들이 부처 신설을 요구하고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이를 약속하는 것은 과거부터 반복돼 온 일이다.

하지만 올해는 조직 개편 요구가 과거 수준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게 행정조직 분야 전문가들과 재계의 예상이다. 현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삼은 성장의 과실을 주로 대기업들이 가져가 중소기업계 등 이익 배분에서 밀린 쪽의 불만이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중기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중기청이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펴는 지식경제부에 비해 힘이 약해 밀릴 수밖에 없다”며 “중소기업이 생존하려면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도 역대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과 달리 불황의 늪에 빠진 대부분의 IT 벤처기업이 “한국 IT 산업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통부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보여주기’에 그친 조직 통폐합


문제는 행정 수요의 필요성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이해관계를 고려한 주먹구구식 조직 개편이 ‘정치적 보여주기’에 그치면서 결국 장기적인 후유증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1994년 조직 개편에서 보건사회부를 보건복지부로 바꾸면서 외관상 복지를 중시한다는 인상을 줬지만 실제 하부기구는 축소됐고, 환경처를 환경부로 바꿔 위상을 높였지만 예산이나 기능 면에서는 달라진 게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6년 조직 개편 때 통합해양 행정기구인 해양수산부를 신설한 것도 논란거리가 됐다. 당시 정부는 “해양 국가를 건설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주장했지만 상당수는 “대선에서 대통령을 지지해 준 해양도시 부산에 대한 정치적 보답”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정치논리로 탄생된 기구라는 인식으로 해수부는 조직 개편이 있을 때마다 폐지 논란에 휩싸이다 현 정부에서 사라졌다. 김대중 정부의 여성부 신설 배경에 대해서도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는 주장이 지금까지 제기되고 있다.

○ ‘통합형 정부조직’ 후유증도


현 정부는 출범 당시 ‘유능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기존의 18부 4처를 15부 2처로 축소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大)부처주의를 추구하면서 서로 성격이 다른 부처들을 하나로 묶은 정책이 지금 와서 반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정치권이 분리를 약속한 교육과학기술부를 비롯해 과거 농림부에 해양수산부와 보건복지부의 식품산업진흥정책을 통합한 농림수산식품부, 건설교통부와 해양개발 기능 등을 통합한 국토해양부,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를 통합한 기획재정부 등도 잠재적인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전영한 서울대 교수(행정학)는 “국내외를 통틀어 행정조직 개편으로 당초 원하는 목적을 이뤄낸 사례는 거의 없다”며 “무조건 조직 개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정책 조정이나 예산 배분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부터 먼저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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