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동맹관계-수출시장 둘다 포기 못해”… 당분간 ‘전략적 모호성’ 유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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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한국에 매인 돈 5조원… 양국 관계 악화 원치 않아
각국 움직임 막판까지 보고 이란 제재 동참 수위 결정

미국의 국방수권법 발효에 따른 이란 제재에 한국이 동참하면 한-이란 관계는 어떻게 될까.

18일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란은 최근 여러 외교적 경로를 통해 정부에 강한 반발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이란 내 한류 바람과 한국산 제품들의 판매량 등을 감안할 때 정부로서는 내심 매우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가능성을 경고하고, 미국의 증산 요구에 호응하려는 주변 중동 국가들에도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등 국제사회에 맞서 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금융기관에 매여 있는 5조 원대의 이란 돈을 감안하면 이란이 한국과의 관계를 급격히 악화시킬 만한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란이 5조 원에 이르는 돈을 한국의 은행들에 넣어둔 상황인 만큼 양국 관계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은 2010년 10월 미국의 이란 제재 조치로 이란의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영업정지된 뒤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이란 계좌를 개설했다. 이란과의 원유 수입 대금은 여기에 원화 예금 형태로 예치돼 왔다. 한국이 이란에 수출하는 대금도 여기서 결제가 이뤄져 왔다. 원유 수입대금이 한국산 제품의 수출대금보다 많다 보니 이 두 계좌에 쌓인 자금은 지난해 말 현재 5조2000억 원에 이른다.

정부는 미국의 이란 제재 동참에 대해서는 주변국의 움직임과 미국 의회, 행정부의 동향 등을 면밀히 살핀 뒤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 규모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일단 제재에 최대한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구체적 수치는 막판까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외교부 당국자는 “가위로 포목을 자르기 전에 한참 동안 자를 지점을 재어보다 막상 결정을 하면 단번에 잘라 버리는 식으로,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대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이 이란산 원유 수입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기를 기대하는 반면 경제계와 관련 부처는 30% 수준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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