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마친 北 첫행보가 李대통령 맹비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30일 16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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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상종않겠다' `복수의 불바다' 거친 표현
1994년보다 비난수위 높아…남북관계 `냉랭' 예고

북한 최고 권력기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대한 우리 정부의 조문 태도를 강도 높게 비난하고 나섬에 따라 새해 남북관계도 빙판이 예상된다.

북한은 30일 발표한 국방위원회 성명에서 김 위원장 사망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과 조문 제한조치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이명박 정부와 "영원히 상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한은 17년 전 김일성 주석의 장례식 직후에 우리 정부의 조문태도를 문제 삼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을 실명 비난했고, 남북관계는 한동안 얼어붙었다.

이날 국방위 성명은 내용이나 성명을 낸 주체 등에서 김 주석 사망 때보다 수위가 훨씬 높아 새해에도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상태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게 됐다.

●최고 권력기구 명의 첫 비난성명 = 이날 성명은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 명의로 나왔다. 북한이 '국방위 대변인' 명의로 대남비난 성명을 내보낸 적은 종종 있지만 국방위 기관 명의의 비난성명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위는 이 성명이 "당과 국가, 군대, 인민의 위임에 따른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만큼 무게와 권위가 실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비난 수위 역시 지난 5월30일 국방위 대변인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간 비밀접촉 내용을 공개하며 "이명박 역적패당과 상종하지 않겠다"고 한 대변인 성명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영원히'라는 표현까지 붙여 잔여임기를 1년 남긴 이명박 정부와 대화나 접촉이 없을 것이라는 점도 시사했다.

'만고역적 이명박 역도'에서 '인륜도덕을 짓밟는 불망나니 처사' '반민족적인 대역죄' '씨도 없이 태워버리는 복수의 불바다' '괴뢰들의 아성을 짓부시는 복수의 포성' 등 대남 비난에 사용되는 거친 표현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전한 조의 내용과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천안함 관련 발언,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김 위원장 사망발표 직후 취해진 군의 경계태세 등도 싸잡아 비난했다.

특히 그동안 비난을 삼가해온 '유연화 조치'도 도마 위에 올렸다. 국방위는 "우리가 바라는 북남관계 개선은 이명박 역적패당이 떠드는 '강경'과 '유연성', 그것을 뒤섞은 교활한 술수에 기초한 개선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유연화'로 대변되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에도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당분간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조문갈등→남북경색'…17년 전과 판박이 = 김 주석 장례기간이던 1994년 7월 북한이 대남비난을 쏟아낸 주된 이유도 당시 남한정부의 조문태도였다.

당시 정부, 민간차원의 조문을 금지한 정부는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회(한총련)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등 재야단체의 조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북한은 즉각 노동신문과 각급 사회단체 성명을 통해 남측을 비난했고, 7월13일 처음으로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 대변인 명의의 담화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맹비난했다.

이틀 뒤에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국민들의 조의 표시를 총칼로 탄압했으며, 청소년학생들의 조의방문을 위한 북행길마저 차단했다"며 비난 수위를 올렸다.

당시 '조문갈등'으로 남북관계는 1년 가까이 얼어붙었다.

김영삼 정부는 그해 10월 "남북정상회담은 유효하다"는 입장과 '남북경협 활성화 조치'를 발표하며 관계회복에 나섰지만, 북한은 `경협안 거부'로 맞섰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벌어진 남북간 조문갈등도 17년 전과 비슷한 양상이다.

북한은 이번에도 우리 정부의 조문불허 방침을 문제삼아 김 위원장 사망소식이 발표된 지 불과 나흘 만인 23일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야만행위"라고 포문을 열었다.

영결식 전날인 27일에는 10건 안팎의 비난기사를 쏟아냈다. "상종하지 않겠다"는 국방위의 이날 대남 메시지는 김 위원장 사망이 발표된 지 11일, 공식 장례절차가 끝난 지 하루 만에 나온 것이다.

남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에 비해 미국과는 적극적으로 협상한 1994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북한은 상중임에도 뉴욕채널을 통해 미국과 접촉을 이어갔다.

'통미봉남'(通美封南)의 17년 전 태도도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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