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北 고농축우라늄’ 공개했던 美헤커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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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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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시설 확인위해 내년 다시 방북할 것”

2010년 방북해 둘러본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생산시설을 공개해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핵물리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국내 북핵 및 외교 관계자들과의 만남과 강연 등을 위해 방한한 그는 “북한이 미사일 핵탄두 개발을 위해 제3차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2010년 방북해 둘러본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생산시설을 공개해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핵물리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국내 북핵 및 외교 관계자들과의 만남과 강연 등을 위해 방한한 그는 “북한이 미사일 핵탄두 개발을 위해 제3차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세계적인 핵물리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이 12일 방한했다. 지난해 11월 9∼13일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시설을 보고 온 뒤 방북보고서를 통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주인공이다. 13일 오전 그를 단독으로 만났다. 미국 핵과학협회 시보그 상을 수상한 헤커 박사는 1945년 역사상 처음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던 세계 최고 핵과학연구소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24년간 일했으며 소장(1986∼1997년)도 지냈다.

―2004년 1월부터 지난해까지 총 7차례 방북했다. 북핵 고비 때마다 북한은 박사를 불렀다. 이유가 뭔가.

“부른 게 아니라 청을 넣으면 승낙하는 식이다. 첫 방북은 동료 북한전문가인 존 루이스(스탠퍼드대 석좌교수)와 함께였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북한에) 물어보고 북한이 응하면 재방문하는 식이었다. 북한은 내가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받아주는 것 같다.”

―이익이라면….

“내가 본 모든 사실을 세계에 전한다는 믿음이다. 첫 방북 때 우리는 1년 만에 북한 땅을 밟은 첫 서양인이었다. 그 1년 전 북한은 서양인을 모두 쫓아냈다. 방북 직전 북한은 ‘핵무기를 위해 플루토늄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지만 세계인들은 크게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즈음 나를 불렀고, 핵 공정 시설로 데려가 플루토늄 핵물질을 내 손에 쥐여주기까지 했다(당시 이홍섭 영변원자력연구소장이 플루토늄이 들어있는 유리병을 쥐여준 것을 말한다). 작년 11월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수년간 고농축우라늄이 없다고 주장하다 또다시 서양인들을 쫓아낸 얼마 뒤인 2009년 4월엔 ‘있다’고 말했다. 그때도 믿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를 통해 알리기를 바랐다.”

―지난해 북한이 공개한 ‘영변에서 본 원심분리기 2000개’의 작동 여부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영변에 있었던 시설물 2층에는 현대식의 4개 통제실이 있었고 4대의 평면 컴퓨터 스크린과 각종 숫자가 가득했다. 원심분리기 2000개 정도를 봤고 그들도 그렇게 말했다. 분리기는 내부회전이 일어나기 때문에 밖에선 작동 여부를 모른다(용어설명 참조). 우리가 책임자에게 작동 여부를 묻자 ‘작동 중’이라고 했다. 그게 전부다.”

그의 말은 핵 과학자답게 신중하고 차분하며 논리적이었다.

―다른 곳에서 만들어 갖다 놓았을 수도 있나.

“북한은 고농축우라늄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한 지 1년 7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내게 보여주었다. 그 짧은 시간에 시설을 짓고 작동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곳에서 오랜 시간 설계하고 짓고 작동해 본 뒤에 영변에 복제해 놓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다른 시설에 대해 전혀 모르거니와 앞에서도 말했지만 고농축우라늄을 거기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현재로선 우라늄 핵폭탄을 만들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는 그러면서도 “만약 만들고자만 한다면 1년이면 충분하다. 어쩌면 벌써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혹시 작년에 보여준 것은 고농축이 아니라 저농축 아닐까.

“역시 모른다. 북한이 내게 고농축을 위한 것이라 했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아니라고 할 만한 증거가 없으니까 말이다. 내 생각에는 내년쯤 아마 누군가, 혹시 내가?(웃음) 확인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영변 이외 핵 제조시설이 또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핵폭탄은 그렇다 치고 핵을 미사일에 장착하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 것이라 예상하나.

“그것 역시 모른다. 그렇게 하려면 핵탄두를 소형화해야 하는데, 매우 어려운 일이다. 소형화한다 해도 핵이 작동하는지 안 하는지 실험해야 하는데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라 쉽지 않다. 만약 실험이 성공한다면 빠른 시간 안에 핵미사일을 만들 수 있다. 지난해 10월 조선노동당 창당 65주년 기념열병식에 공개된 ‘무수단’ 미사일은 안에 핵을 장착하기에 적당한 크기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실험을 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북한이 이란과 공동으로 핵무기 개발을 한다는 게 사실인가.

“미사일 공동개발에 대한 증거는 많지만 핵무기는 없다. 만약 두 나라가 함께 뛰어든다면, 정말 걱정이다.”

―경수로 원자로 진행 상황은 어떤가.

“구조물은 발전하고 있다. 높아지고 있고 돔도 있고 엔진 작동을 위한 복도도 있고 펌프실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압력 용기를 만드는 작업 등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내년 4월까지 완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2, 3년은 걸릴 것이다. 북한이 원자로를 만들고 핵을 개발하는 것은 무기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에 만든 경수로 원자로는 너무 작기 때문에 전기 생산을 위해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비록 과학자이긴 하지만, 주민들은 굶어죽는데 핵을 만드는 것을 직접 보면 화가 나지는 않나.

“북한 정부가 돈을 핵 만드는 데 쓸지, 주민들을 위해 쓸지는 그들의 결정이기 때문에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물론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마음 아프지만 북한 정부의 결정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수는 없다.”

순간, 엄정한 과학자의 입장에 동의하는 한편으로 “북핵문제는 역시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닌 우리의 문제”라는 자각이 들었다. 아무리 친한 동맹이라도 그들이 북핵문제를 우리만큼 절박한 문제로 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문득 그의 ‘핵 철학’이 궁금해졌다.

“젊은 시절 로스앨러모스에서 일할 때 당시 소장이 ‘우리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 폭탄을 만드는 게 아니다. 각 나라의 정치 리더들이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을 배울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만든다’고 했다. ‘핵폭탄’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무기가 되어버렸지만 그것이 세계 평화를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한다. 다 잘 풀릴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너무 많은 나라가 핵폭탄을 갖는 것을 막는 것이고 결국 핵 없이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의 말은 핵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핵을 갖고 있음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는 ‘핵 억지력’을 옹호하는 말로 들렸다.

그는 북한과 어떻게 핵협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핵실험 금지, 미사일 실험 금지’를 전제로 ‘3(No)’를 주장했다. 다름 아닌 핵(무기 개발)금지, (핵관련 물질) 수출금지와 수입금지가 그것이다. 그는 “북한은 주로 중국에서 재료를 수입해 핵을 만들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을 통한 재료 수입을 막아야 한다. 따라서 수출 금지도 중요하지만 수입 금지가 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방북 예정은 있나.

“이변이 없으면 내년에 가게 될 것 같다. 일정을 조율하며 초청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는 세종연구소 주최로 14일 오전 7시 반 서울 롯데호텔에서 강연한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 원심분리기와 고농축우라늄 ::


자연 상태의 광석인 우라늄에는 핵폭탄에 쓰이는 우라늄 235가 0.7%에 불과하고 나머지(99.3%)는 우라늄 238이다. 우라늄광석을 기체로 만들어 원심분리기에 넣고 1분에 5만∼7만 회를 돌리면 가벼운 235는 멀리, 무거운 238은 가까이 모인다. 이렇게 추출한 우라늄 235를 90% 이상 모아 고농축우라늄을 만든다. 이것을 23kg 이상(제2차 세계대전 때 투하된 히로시마 원폭은 62kg) 모으면 핵폭탄으로 실전 사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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