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민주주의 대공황을 넘자]<3>한국 정치 뭐가 문제기에?- 철없는 열여섯살 지방자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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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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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예산 꿀꺽… 승진 시즌 뇌물 꿀꺽… 썩어빠진 풀뿌리

국회와 너무 닮은 지방의회 2006년 12월 20일 경기 하남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소속 시의원들이 광역화장장 유치와 관련한 예산 통과를 막기 위해 의장석을 점거하면서 한나라당 시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DB
국회와 너무 닮은 지방의회 2006년 12월 20일 경기 하남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소속 시의원들이 광역화장장 유치와 관련한 예산 통과를 막기 위해 의장석을 점거하면서 한나라당 시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DB
“국가 실핏줄이 썩어가고 있다.”

기성 정당 체제의 문제점이 크게 부각되고 있지만 지방정부에서 벌어지는 부패상 역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중앙정부와 여의도 정치권이 심장부라면 지방정부는 실핏줄이라 할 수 있다. 그 실핏줄을 맑게 하지 않으면 국가 전체가 곪을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들만의 예산 카르텔

전직 A 구청장은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예산 편성단계부터 일종의 담합을 한다”고 말했다.

“정상적이라면 단체장이 예산을 편성하고 의회가 심의를 해야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편성 때부터 단체장이 의원들의 민원 예산을 들어주고, 의원들은 단체장의 핵심 사업 예산을 밀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영남권의 B 시의원도 “보통 단체장이 예산안을 만들기 전에 청사를 찾아가 미리 손을 쓴다”고 말했다. 그는 “의원들끼리도 모두 호형호제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의 공약사업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게 암묵적인 관행이다”고 말했다.

1995년 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된 지 16년이 지났지만 지자체의 예산 집행을 감시해야 할 지방의회가 기초단체장과 공생구조를 구축하면서 고질적인 유착관계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행정안전부가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에게 제출한 2010년 지방재정 현황에 따르면 지방정부 단체장이 집행한 지방예산은 172조8732억 원이다. 자체수입은 54%인 93조3558억 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79조5174억 원은 정부로부터 보조금과 교부세 명목으로 지원받은 것이다.

지자체의 예산은 대부분 생색을 낼 수 있는 공원 조성과 이권이 개입하는 토목 분야 등에 집중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A 구청장은 “사실 상당수 지방의원들은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예산 심의 기능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들만의 상생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는 추경예산이 활용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직 B 군수는 “의회에서 전체 예산을 삭감하면 그 금액을 예비비로 전환시키면 된다”며 “향후에 추경예산을 통해 삭감된 금액을 다시 채워놓은 뒤 의원들의 숙원사업의 사업비로 충당하면 된다”고 했다.

사실 정부 보조금은 ‘쌈짓돈’이다. 경북의 한 지자체는 8월 감사원으로부터 보조금 집행 잔액 반환업무를 철저히 하라는 시정요구를 받았다. 2007∼2009년 정부와 경북도로부터 보조금 6386억 원을 교부받은 뒤 집행 잔액인 6억4300만 원을 반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치단체는 보조금으로 노인복지시설 운영과 호미곶관광지 조명설치 공사, 숲 가꾸기 사업, 지역현안도로사업 등을 진행한 뒤 현재까지 남은 금액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예산 전용도 빈번하다. 감사원은 최근 전국 49개 광역·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지방재정 실태를 감사해 전북도와 경남도 등 10개 지자체에서 지방의원 지역구 사업을 위해 ‘주민편익증진사업비’ 등의 명목으로 전용예산을 편성해 사용한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 만연한 부정부패

수도권의 C 시의원은 “도시계획위원회 등의 소속 지방의원들은 재건축 등과 관련해 기업체로부터 집중적인 로비 대상이 된다”며 “골프와 술 접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자치단체장은 각종 인허가권과 도시개발사업, 공유지 매입·매각 등 각종 이권사업을 주무르고 있고, 지방의회도 해당 상임위를 통해 실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단체장과 지방의원, 건설업자 등의 ‘평일 골프’도 종종 볼 수 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단체장에겐 주로 인사 청탁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현직 D 시장은 “일부 지역에선 5급 사무관은 5000만 원, 6급과 7급은 2000만∼3000만 원의 돈을 받는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승진 심사 6개월 전부터 집중적으로 청탁이나 일종의 압력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단체장이 청렴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행사를 비자금 조성의 방법으로 활용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읍면 단위의 축제를 만든 뒤 출향민들을 대상으로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모금을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읍면 등 각 지역 대표들이 모은 돈은 군수에게 들어가고 이 돈의 일부는 다시 군의원과 광역 시의원들에게 건네진다”고 말했다. 지방의회의 경우 1991년∼2009년 12월 사이 광역의원 216명과 기초의원 865명이 선거법 위반, 뇌물알선수재, 사기 공갈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됐다. 이는 재·보궐선거로 이어지기 때문에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가 선진화되려면 지자체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담합 구조를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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