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무용가 최승희, 북한에서 뒤늦은 ‘호강’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8일 10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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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무용가"…기념행사·찬양 `봇물'

북한이 일제강점기 세계적 무용가로 명성을 떨친 최승희를 띄우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4일 그의 탄생 100년을 계기로 기념공연과 토론회 등 행사가 성대하게 개최됐고 관련보도도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북한이 근년에 복권된 것으로 알려진 최승희의 탄생일에 맞춰 그의 업적을 평가해왔지만 올해처럼 전 매체를 동원해 대대적으로 띄우기에 나선 것은 이례적 행보로 분석된다.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은 27일 최승희가 창작한 무용극 `사도성의 이야기'가 공연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공연은 26일 평양대극장에서 진행됐는데 김기남 노동당 비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안동춘 문화상, 김병훈 문예총중앙위원장, 최승희의 유가족 등이 관람했다.

`사도성의 이야기'는 왜적과 맞서는 백성들의 투쟁과 그 과정에서 성주의 딸과 한 어부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창작무용극으로, 북한에서 50여년 만에 재연된 것이다.

중앙방송은 "최승희 선생은 백두산 위인들의 따뜻한 사랑 속에 조선민족무용발전사와 세계문예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또 26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24일 열린 최승희 탄생기념 연구토론회에서 북한 예술인 4명이 최승희의 삶과 예술활동을조명한 내용을 잇따라 소개했다.

김미라 조선무용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장은 "최승희 선생은 우리의 춤가락들을 발굴하고 정리하는 데 온갖 정열과 피타는 노력을 쏟아부었다"고 했고, 임수향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 무용부장은 "최승희선생이 가혹한 일제식민지 통치에서 조선의 얼을 추구한 민족무용을 창조발전시킨 선각자"라고 평했다.

또 24¤25일 최승희 100회 생일을 기념하는 도서 발간식, 묘소 헌화, 무용 예술인의 모임도 줄을 이었다. 노동신문은 24일 최승희를 `조선무용예술의 1번수' `조선의 3대 여걸' 등으로 극찬하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이 최승희를 대대적으로 띄우는 것은 그가 북한 무용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최승희는 1946년 월북한 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공훈배우, 인민배우, 조선무용가동맹 중앙위원회 초대위원장, 무용학교 교장, 국립무용극장 총장 등으로 활약했다.

그는 1967년 남로당 사건에 연루돼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해는 2003년 애국열사릉에 안장돼 사실상 복권됐다.

최승희 복권에는 김일성 주석이 남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최승희를 호평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진 것이 결정적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은 그동안 최승희가 `주체예술'을 발전시키고 민족적 자긍심이 강한 무용가라고 선전해왔다.

북한 매체는 최승희가 김일성 주석의 `사랑과 배려' 덕에 무용가로 업적을 남길수 있었다고 강조함으로써 체제선전에 활용하는 측면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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