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직구 승부’… 공은 민주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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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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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비준 동의해주면 3개월내 美에 ISD 재협상 요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와 관련해 민주당 등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15일 국회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접견실에서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와 관련해 민주당 등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15일 국회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접견실에서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국면의 최전선에 섰다. 이날 국회를 방문해 여야 지도부를 만난 이 대통령은 민주당을 향해 ‘깜짝 제안’을 내놓았다. ‘빈손’일 것이란 예상을 완전히 뒤집으며 엉킨 매듭을 자신이 직접 풀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선발효-후재협상’ 카드를 꺼냈다. 국회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면 발효 뒤 3개월 안에 야당이 주장하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의 재협상을 자신이 책임지고 미국에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승부수는 여야 모두를 압박하고 있다. 당장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정치의 실종’이란 파국(破局)의 장본인이 돼야 한다. 한나라당도 뒷짐을 지고 있을 수 없게 됐다. 민주당이 이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하면 협상의 여지는 사라진다. 한나라당은 강행 처리냐, 아니면 무기력한 집권당으로 기록되느냐를 놓고 선택해야 한다.

○ “파격 제안” vs “새로울 게 없다”


이때 ISD논의?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12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귀엣말을 나누고 있는 모습. 호놀룰루=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이때 ISD논의?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12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귀엣말을 나누고 있는 모습. 호놀룰루=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이 대통령과의 회담 뒤 기자들을 만나 “(이 대통령이) 빈손인 줄 알았는데 파격적”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명규 원내수석부대표는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반응은 싸늘했다. 노영민 원내수석부대표는 “새로운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려면 ISD를 폐기해야 한다는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양당이 똑같은 제안에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것은 지난달 31일 양당 원내대표 간 합의문 때문이다. 당시 한나라당 황우여,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합의문에서 ISD와 관련해 ‘정부는 협정 발효 후 3개월 이내에 ISD 유지 여부에 대해 양국 간 협의를 시작해 1년 내에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결국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제안이 당시 합의문 내용과 똑같다는 것이다. 이 합의문은 작성 당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곧바로 ‘보이콧’됐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재협상을 ‘보증’함으로써 여야 간 약속과는 차원이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민주당도 지난번 합의문은 여당이 정부를 보증하는 형태였다면 15일 제안은 이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겠다고 나선 만큼 진일보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민주당이 16일 의원총회를 열어 이 대통령의 제안을 논의해보겠다며 협상의 여지를 남긴 것은 이 때문이다.

○ ‘대통령 제안’ 실현 가능성은?


한미 FTA 협정문 22조 3항과 4항에 따르면 협정이 발효된 이후 얼마든지 협정의 개정을 상대방에게 요구할 수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달 30일 합의한 ‘서비스·투자위원회 설치’ 서한에서도 협정 발효 후 90일 이내에 위원회를 구성해 서비스·투자 분야의 모든 문제를 실무적으로 협의하기로 약속한 상태다.
이 때문에 ISD 재협상이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15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우리가 미국에 투자한 것이 540억 달러로 미국이 우리에게 투자한 450억 달러보다 많다”며 “ISD 조항은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ISD가 재협상 테이블에 올라가면 우리도 미국에 무엇인가를 내 줄 수도 있다. 한미 FTA에서 논의되지 않은 쌀이나 쇠고기 개방이 미국 측 요구 조건으로 내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원칙이 훼손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ISD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재협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 미국과의 ‘사전 교감?’


이 대통령의 이날 제안이 미국과의 사전 합의에서 이뤄진 것인지도 관심을 모은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는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도 “한미 두 정상이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ISD 관련 논의를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면서도 “양국 정상 사이에 깊은 교감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외교통상 당국이 “ISD를 폐기할 수는 없지만 소송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등 모종의 해법이 있다”고 설명하는 점도 ‘사전 교감설’에 무게가 실리게 만든다.

지금까지 헌정 사상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여야 간 교착상태에 놓인 긴급 현안을 직접 중재한 적은 없다. 임기가 1년 3개월 남은 이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중재안이 거부되면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만 재촉할 수 있는 부담을 떠안았다. 지난해 세종시 수정안 부결 때도, 개헌 논의 좌절 때도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뒀던 이 대통령이 한미 FTA 비준을 마지막 승부수로 띄운 셈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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