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16년 시민운동 마감… 이상 대신 현실 선택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 14일쯤 서울시장 출마 선언

“제가 가는 길은 다르지만 세상을 좀 더 밝고 아름다운 길로 만들려 합니다.”

한국 시민운동의 대부로 불려온 박원순 변호사가 9일 시민운동가로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서울시장 선거 준비 체제로 전환했다. 1995년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맡아 시민운동에 뛰어든 지 16년 만이다.

박 변호사는 이날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아름다운재단’, 안국동의 ‘아름다운가게’, 평창동의 ‘희망제작소’를 차례로 방문하고 이사직 등 모든 직책을 사임했다. 이들 단체는 모두 박 변호사의 주도로 설립됐다.

그는 아름다운재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인용해 “가지 않은 길은 늘 낯설고 때론 위험하고 나중에는 후회도 하는 길인 것 같다”며 “마음만은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추석 연휴 기간에 시민사회 원로 등을 만난 뒤 14일경 공식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정치권은 끊임없이 박 변호사를 향해 ‘러브콜’을 보내 왔다. 주요 선거 때마다 야권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공들였고,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서는 한나라당도 그를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영입하기 위해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정치권과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 왔다. 2007년 1월 야권 대선후보로 언급될 때 박 변호사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치권 입문과 관련한)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았고 더는 답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던 박 변호사가 자신의 둥지인 시민사회를 떠나 정치권으로 발을 돌린 이유는 뭘까. 그의 지인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과 범야권에 대한 ‘부채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해석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2∼2006년 서울시장 급여 전액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면서 박 변호사와 친분을 맺었다. 윤석인 희망제작소 부소장은 “2007년 대선에서 이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을 지지한 것은 아니지만 ‘기왕 당선됐으니 잘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 대한 이 대통령의 대응 방식에 실망했고, 이후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이 급감하면서 박 변호사의 태도는 서서히 바뀌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박 변호사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정보원이 시민단체 관련 기업까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한 것을 놓고 국정원이 박 변호사를 상대로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게 박 변호사의 마음을 바꾼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원고(국가)가 패소해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한 지인은 “박 변호사는 원래 시민운동의 연장 차원에서 작은 지방자치단체를 맡아 경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국정원 소송을 겪으면서 시민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정치에 대한 뜻이 구체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동안 ‘도와 달라’는 범야권의 요청을 거듭 고사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누적된 것도 그가 마음을 바꾼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연합체 ‘희망과 대안’의 하승창 공동운영위원장은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도 야권에서 서울시장 출마 요청이 있었는데 거절한 것 등에 대해 ‘어려울 때 같이하지 못했다’는 마음의 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