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리플레이]‘한식 세계화’ 김윤옥 여사 프로젝트 2년 만에 시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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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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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식당도 힘든데 “정부 직영점” 무리수

《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모습이 연달아 국내외 언론에 보도되던 때가 있었다. 2009년 ‘한식 세계화’ 바람이 불면서 정부가 국가프로젝트 차원에서 이를 밀어붙이던 시기였다. 김 여사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한식 세계화는 나름대로 세계적 관심을 끄는 듯했다. 정부는 여세를 몰아 미국 뉴욕에 직접 한식당을 내겠다며 지난해 말 50억 원의 예산(올해 전체 한식 세계화 예산은 312억 원 규모)까지 배정받았다.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아직까지 뉴욕 한식당 사업은 수익성 논란 속에 예산을 한 푼도 집행하지 못했다. 한식 세계화를 ‘영부인의 프로젝트’로 키우려던 청와대 안팎에서도 “이러다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청와대에선 ‘책 읽어주는 여사님’ 등 새로운 프로젝트 논의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 시작은 화려했으나….

2009년 5월 4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식세계화추진단’ 발족식. 명예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김 여사의 격려사에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이후 김 여사는 미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한식요리를 선보였고 뉴욕에서 열린 한국참전용사들과의 오찬에서는 팔을 걷어붙이고 해물파전을 부쳤다. 지난해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한식을 전 세계 정상들에게 알린 최고의 무대였다. 청와대는 ‘김윤옥의 한식 이야기’라는 제목의 한식 관련 책을 제작해 해외 정상들에게 선물로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면에선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한식 세계화를 하겠다며 나선 사업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경쟁이 불붙었고 노골적인 상호 비방으로 이어졌다. 양식을 전문으로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한식을 한다며 달려들어 정부의 예산 지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 한식 전문가는 “30년간 한식만 연구해온 나 같은 사람들은 그런 싸움을 지켜보며 허탈했다. 당시 ‘한식 세계화’의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도 “이해관계자들에게 시달리는 일이 때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면서 “골치가 아프다 보니 정부가 손을 떼고 한식재단에 떠넘겨 버리자는 의견도 많았다”고 토로했다.

○ 잇단 시행착오

정부가 해외 주요 도시에 직접 한식당을 운영하겠다는 ‘플래그십 한식당’ 운영계획은 협력자로 손잡아야 할 사업자들로부터 되레 거센 비판에 부닥쳤다. 정부가 운영하는 한식당과 경쟁하게 된 현지 식당 관계자 사이에서는 “우리 보고 죽으라는 소리냐”는 볼멘소리가 돌아왔다. 뉴욕의 ‘우래옥’, 뉴저지의 ‘코리아팰리스’ 등 유명 한식당들이 문을 닫는 등 민간사업자들도 경영난에 허덕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식 세계화를 위한 전문요리사를 육성하겠다며 시행한 재교육 프로그램 ‘스타쉐프’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프로그램을 거친 뒤 해외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식재단 홈페이지의 ‘구인구직’ 코너에는 지난해 10월 단 한 건의 구인공고가 올라있을 뿐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한식당 개선자금 지원 대상에 전통한식이라고 보기 어려운 양념치킨업체를 포함시켰다가 “언제부터 튀긴 닭이 한국의 전통음식이었느냐”는 지적을 받는 일도 있었다.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한식을 즐긴다는 현지 언론 보도 중 일부는 미국 내 한식홍보 대행을 맡고 있는 홍보기획사가 배우나 잡지사 측에 대가를 지불하고 ‘기획’한 작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를 대대적으로 국내에 홍보해 자화자찬식 과잉홍보라는 지적을 받았다.

○ 목적은 참 좋았는데….

농림부 관계자는 “일식이나 태국음식이 세계인의 음식이 되기까지 30년 이상이 걸렸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109개였던 해외 한식당의 점포가 지난해 172개로 늘어난 점, 막걸리 같은 한국 주류 및 농식품의 수출이 해마다 늘고 있는 점 등도 성과로 꼽았다. ‘퓨처브랜드’가 발표한 ‘2009년 국가브랜드 지수’ 중 한국이 파인다이닝(고급식당) 분야에서 처음으로 세계 6위를 기록하는 등 국가브랜드 가치가 높아졌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식 세계화 사업이 동력을 잃지 않으려면 정부가 맞춤형 정책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한식 세계화’ 관련 교육사업을 진행하는 ‘푸드앤컬쳐’의 김수진 원장은 “해외에 나가 보면 한국 식당들이 한국에서 직접 식재료를 공수하며 한국의 음식 맛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며 “정부가 이들의 영업을 지원할 방법을 먼저 찾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음식 맛이 훌륭한데도 자금이 부족해 낡은 시설을 보수하지 못하는 현지 식당들을 리노베이션해주는 사업 등이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식 세계화의 문제점을 추적해온 자유선진당의 류근찬 의원은 “목적은 좋은데 방법이 문제”라며 “준비가 충분히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예산을 집행하거나 일단 사업을 벌여 놓고 문제가 생기면 빠지는 식의 진행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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