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MB 뒷조사 국정원 직원’ 판결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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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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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당직자 제보 전해듣고 71차례 통화
친인척-측근 ‘토지-주택-소득’까지 조사

2006년 8∼11월 이명박 대통령의 주변을 뒷조사한 혐의로 기소됐던 전 국가정보원 직원 고모 씨의 1심 판결문에는 이 대통령의 직계 가족은 물론이고 형제와 처가의 친인척 대부분이 뒷조사를 받은 사실이 상세하게 드러나 있다.

2007년 대선 정국의 핵심 이슈였던 ‘투자자문사 BBK 관련 의혹’의 당사자인 김경준 전 BBK 대표의 부인 이보라 씨 등이 이미 1년여 전에 뒷조사 대상에 올라 있었던 사실도 확인됐다. 대선 이후 서울중앙지검은 ‘국가정보원 이명박 TF 사건’을 본격 수사해 2009년 7월 고 씨를 기소했다. 이후 법원은 1년 8개월여 동안 재판을 한 끝에 고 씨의 뒷조사를 불법으로 판단했다.

○ 사돈의 8촌까지 샅샅이 조사

판결문에 따르면 국정원 협력단 현안지원과 소속 정보관(5급)이었던 고 씨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6년 6월 당시 민주당 조직국장 김모 씨로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부근에 이명박 서울시장이 처남과 측근 명의로 차명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정보 수집에 나섰다. 통상적인 업무 수행인 것처럼 국정원 정보관리단 소속 직원에게 정보 열람을 요청하면 정보관리단 직원은 당시 행정자치부 담당 직원에게는 토지 소유 현황을, 건설교통부 담당 직원에게는 주택 보유 현황을, 국세청 담당 직원에게는 소득 자료를 해당 기관에서 제공받도록 협조 요청을 하는 식으로 정보를 열람해 고 씨에게 전달했다.

고 씨가 개인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활용한 정부 기관은 옛 행자부, 옛 건교부, 법무부, 국세청, 경찰청 등 5곳이었고 이들 기관을 통해 받은 자료는 총 563건이었다.

뒷조사 대상자는 우선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와 처남 김재정 씨, 맏형 이상은 씨 등 일가친척이었다. 정보 열람 횟수가 늘면서 이 대통령 형제자매 및 그 배우자, 둘째형 이상득 한나라당 국회의원 일가, 누이동생의 남편, 김 여사의 둘째언니 등 이른바 사돈의 8촌까지 확대됐다.

또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인 신현송 전 대통령국제경제보좌관, 김백준 대통령총무기획관 등 이 대통령의 참모그룹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당시엔 투자자문회사인 BBK 관련 의혹이 불거지기 전이었으나 김경준 전 BBK 대표의 부인 이보라 씨, 김 씨의 장인인 이두호 전 보건사회부 차관, BBK 직원의 주민정보까지 조회한 점이 눈에 띈다.

고 씨는 2006년 11월 3개월여 동안 뒷조사한 내용을 종합해 ‘이 사장(이 대통령 지칭) 보유 현황’이라는 42쪽짜리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어떻게 활용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판결문에는 “고 씨가 보고서를 폐기하지 않은 채 컴퓨터에 보관해두고 수시로 확인했고 2007년 6월 언론 보도를 보고 파일에 추가 기재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만 돼 있다.

○ 고 씨의 단독범행?

고 씨는 검찰 조사와 공판 과정에서 국정원이 2004년 국정원장의 지시로 부패척결 업무에 집중하게 되면서 비리 첩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해왔기 때문에 이 같은 조사 활동이 국정원 직원의 적법한 직무 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주장했다. 또 직속 상급자인 강모 과장의 승인을 받고 정보를 열람했고 이후에도 수차례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 씨는 “서초동 대검 청사 뒤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차명 부동산이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는 취지의 얘기를 지나가는 말로 들었고 절대 무리하지 말고 여의치 않으면 안 해도 좋다고 당부했다”며 고 씨와 상반된 진술을 했다. 뚜렷한 물증 없이 진술이 상반되면서 재판부도 국정원 윗선에서 개입했는지에 대해선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고 씨가 확보한 자료가 정치권으로 유입됐는지도 불명확한 상태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고 씨가 2006년 7∼11월 최초 제보자인 민주당 당직자 김 씨와 71차례 통화하고 수시로 식사를 함께하는 등 정보를 교류한 사실을 밝혀냈지만 김 씨에게 정보가 유출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 ‘공직자 비리 정보 수집은 국정원 업무?’

공판 과정에서 국정원은 “공직자의 부패 비리행위 적발을 위한 정보 수집 활동은 적법한 직무범위에 속한다”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 씨가 “공직자 비리 정보 수집은 국정원의 정당한 직무”라며 무죄를 주장하자 재판부가 국정원에 사실 조회를 했고 그 같은 의견서를 보내온 것. 고 씨의 뒷조사를 두둔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국정원의 이런 의견에 대해 “국정원은 업무수행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국정원법에서 직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공직자의 부패나 비리행위를 적발하기 위한 정보수집 활동은 국정원 직원의 직무 범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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