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FTA협정문 ‘번역오류’ 재검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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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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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비준 앞둔 한-미, 한-페루뿐 아니라 발효 중인 5건도 다시 확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의 번역 오류로 곤욕을 겪고 있는 정부가 지금까지 타결시킨 모든 FTA 협정문 한국어본을 다시 검독하기로 했다.

7일 외교통상부 고위 관계자는 “국회 비준을 앞두고 있는 한미, 한-페루 FTA 한국어본뿐 아니라 이미 발효 중인 5건의 FTA 모두를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칠레, 싱가포르,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인도와의 FTA가 발효 중이다.

4일 국회 비준을 앞두고 있는 한미, 한-페루 FTA만 재검독 대상이라던 외교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번역 오류 문제가 내부 시스템 미비에서 비롯된 만큼 다른 FTA 협정문에도 오류가 있을 개연성이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게다가 야당을 중심으로 ‘번역 오류가 새로 발견됐다’는 식의 폭로전 양상까지 벌어지면서 불필요한 논란을 조기에 불식시키고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어본 번역은 직역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이 어색해 오류라는 식의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며 “질타는 당연히 받겠지만 이번 사태가 FTA 자체를 부정하는 식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한-EU FTA 협정문 하나를 다시 보는 데도 통상교섭본부 직원 약 40명이 한 달 가까이 동원된 점을 감안할 때 7건의 FTA 협정문 모두를 다시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최석영 FTA교섭대표는 “로펌 등에 외주를 준다고 해도 결국 최종 작업은 통상교섭본부가 맡아야 하기 때문에 한두 달 내에 끝낼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악재의 연속’에 시달리고 있는 외교부 당국자들은 착잡한 표정이다. 외교부는 지난해 유명환 전 장관 딸 특채 사건으로 시작된 ‘신뢰의 위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올 들어서는 ‘능력의 한계’까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다른 관계자는 오역 사건에 대해 “FTA가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라는 점 때문에 서둘러 많은 협정을 체결하려다 능력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외교부는 6일 지난해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공여국 클럽’인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 23개 가운데 가장 높았다고 홍보했다가 7일 ‘1위가 아니라 포르투갈에 이은 2위’라고 정정하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OECD가 정식 보고서보다 먼저 보내온 요약 자료를 실무자가 잘못 이해한 단순 실수였지만 외부 발표 자료 검증 시스템의 허술함을 드러낸 또 다른 사례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金총리 “협정문 오류, 통상본부장이 책임져야” ▼
김종훈 사퇴 여부 주목… 靑 “역량 탁월한데…” 고민


정부의 최고 ‘통상전문가’로 자리를 굳혀온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사진)이 진퇴의 기로에 섰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의 한국어본 오역 논란과 관련해 김황식 국무총리는 7일 국회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정부로서 할 말이 없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통상교섭본부장을 포함해 관련된 사람들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천정배 의원이 “협정문 번역 오류는 세계적 망신이다. 김 본부장은 파면감이 아니냐”고 따져 물은 데 대한 답변이었다. 김 총리는 “파면은 있을 수 없고, 국무위원이 아니니 해임 건의는 아니겠지만 번역 오류와 관련해 혼란을 가져오고 국민에게 실망을 준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 대통령과 상의하겠다”고 답변했다.

사실상 김 본부장의 문책을 건의하겠다는 발언이었다. 김 본부장도 그동안 여러 차례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특히 최근의 오역 사태와 관련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사의 표명이 사퇴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

청와대는 일단 신중한 태도다. 청와대 관계자는 “책임 문제가 있긴 하지만 앞으로 국회 비준까지 만들어내야 하고 중국 등 다른 나라들과도 FTA를 체결해야 하는데 김 본부장 정도의 역량을 갖춘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이 벌어졌을 때 정부 잘못을 인정하고 철저한 반성을 통해 정면 돌파하자는 주장을 편 이도 김 본부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논란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는 게 청와대의 고민이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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