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사격훈련 단행]연평 주민 대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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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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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구나”→“빨리 피신”→“드디어…”→“휴∼ 집으로”

20일 오후 2시 30분 연평도 대피소에 피신해 있던 주민과 취재진들이 멀리서 ‘쿵’ 하는 소리를 듣고는 잠시 웅성거렸다. 해병대 연평부대의 해상 사격훈련이 비로소 시작됐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첫 포격 소리는 작았지만 사격이 계속될수록 또렷하게 들렸다. 포격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때 일부 주민은 “진동이 느껴진다”며 마른침을 삼켰다.

연평도 해병부대의 해상 포사격훈련이 이날 오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연평도에는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에 앞서 오전 연평도에는 1m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짙은 안개가 끼어 “오늘 사격훈련이 어려울 것 같다”는 관측도 일부에서 나왔다. 하지만 군은 오전 7시 20분경 인천해양경찰서 연평출장소에 ‘어선 조업 불가’를 통보하면서 사격훈련을 위한 사전준비를 예정대로 진행했다. 이어 면사무소는 오전 8시 7분 “곧 사격훈련이 있을 예정이니 대피를 준비하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 긴장한 주민들 아침 일찍 대피

“주민들은 군경 안내에 따라 신속히 가까운 대피소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날 오전 9시 6분 사격훈련이 곧 있을 예정이니 대피소로 즉각 대피하라는 면사무소 방송이 흘러나왔다. 주민 102명과 관공서 직원, 복구인력, 취재진 등 총 292명은 이날 10시 20분까지 대연평 12곳, 소연평 1곳 등 13곳의 대피시설로 몸을 숨겼다. 대피소 입구에는 군인과 경찰 등이 배치돼 출입을 통제했다. 섬에 남아있던 민간인들이 모두 대피하자 섬은 일순간 고요한 적막에 휩싸였다. 마을에 남아 있는 개들이 간간이 짓는 소리가 적막을 뚫고 멀리 퍼져나갔다.

대피소에 모인 주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모습이었다. KT 송전탑 옆 대피소에는 39명이 몸을 피했다. 강신옥 씨(82)는 “포를 또 쏜다고 하니 겁이 나서 일찍 피신했다”며 “(대피소가) 춥고 어두침침해 불편하지만 훈련이 잘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은 급히 대피하면서 미처 두꺼운 옷을 준비하지 못한 탓에 대피소의 낮은 기온에 몸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연평도에 짙게 깔린 안개가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사격훈련은 계속 연기됐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대연평 12곳의 대피소를 돌며 “기상 상황으로 훈련 시작 시간이 늦춰지고 있으나 오늘 반드시 사격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방관들과 면사무소 직원들은 사격훈련이 오후로 연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비상상황이 길어질 것에 대비해 대피소에 난로를 추가로 설치하고, 음식물 반입을 늘렸다. 송전탑 앞 대피소에 피신한 주민들은 미리 싸온 과일과 즉석밥, 구호식품 등을 나눠 먹으며 ‘폭풍 전야’의 긴장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애쓰는 분위기였다.

○ 사격훈련 돌입에 대피소는 ‘침묵 모드’

훈련 전 긴급대피 20일 연평도에서 포사격 훈련이 실시되기 전 연평면 동부리 대피호로 미리 피신한 주민들이 군 통제관으로부터 방독면 사용 요령을 배우고 있다. 이날 훈련은 오후 2시 반에 시작해 1시간 반가량 진행됐다. 주민들은 오후 6시 반경 대피호에서 나와 귀가했다. 연평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훈련 전 긴급대피 20일 연평도에서 포사격 훈련이 실시되기 전 연평면 동부리 대피호로 미리 피신한 주민들이 군 통제관으로부터 방독면 사용 요령을 배우고 있다. 이날 훈련은 오후 2시 반에 시작해 1시간 반가량 진행됐다. 주민들은 오후 6시 반경 대피호에서 나와 귀가했다. 연평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면사무소는 낮 12시 반경 “혹시 밖으로 나온 주민이 있다면 즉시 대피소로 피신하라”는 방송을 다시 내보냈다. 오후 1시 55분경 대피소 입구를 지키던 군인들이 “잠시 후 사격훈련이 실시될 예정”이라고 설명한 뒤 오후 2시 7분부터 대피소 철문을 굳게 닫고 출입통제에 들어갔다. 철문이 굳게 닫히자 그전까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긴장을 녹이던 주민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몸을 담요에 파묻거나 고개를 푹 숙이는 등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오후 2시 30분 드디어 연평부대의 해상 사격훈련이 시작되자 주민들 사이에는 “아! 드디어 시작했구나!” 하는 탄성이 새어 나왔다. 일부 주민은 “포격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다”며 “이러다 또 북한의 대응사격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며 몸을 떨었다.

연평교회 송중섭 목사는 “어차피 훈련을 할 거라면 빨리 지나가야지, 계속 연기가 되니까 오히려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빨리하고 끝나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할 것 같다”면서 주민들을 다독였다.

○ 훈련 끝나고도 2시간 넘게 ‘대기’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자주포 소리가 오후 3시 반경부터 요란한 벌컨포 소리로 바뀌었다. 이후 연평도 하늘에 포성이 멈춘 시간은 34분이 더 지난 오후 4시 4분이었다. 주민들은 군을 통해 “사격훈련이 완전히 끝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군은 훈련이 종료된 뒤에도 주민 대피령을 계속 유지했다. 현장에 파견된 합참 관계자는 대피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북한의 도발 징후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조금만 더 참아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해가 완전히 진 오후 6시 30분 주민 대피령이 해제되면서 대피소의 육중한 철문은 다시 열렸다. 대피소 경계임무를 서던 해병대원들은 “혹시라도 비상상황이 다시 발생하면 즉각 대피소로 다시 피신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긴장과 추위에 몸을 웅크렸던 주민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느린 발걸음을 옮겼다. 지친 표정의 이유성 씨(83)는 “이런 경험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연평도가 다시 평화로운 마을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힘겹게 말했다.

연평도=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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