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평도 포격 도발]인천 피신 주민들 호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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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떨려서 못돌아간다, 살길 만들어 달라”

25일 인천 남구 용현동 옹진군청 회의실. 연평도를 탈출한 주민들이 찜질방, 여관 등에 흩어져 있다가 송영길 인천시장, 조윤길 옹진군수와의 간담회 참석에 참석하려고 한자리에 모였다. 주민들은 북한의 도발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현실을 차마 인정하지 못한 듯 몸서리를 쳤다. 한 주민은 “있는 재산 다 쓰고 노숙자가 되더라도 다시는 연평도에 가고 싶지 않다”고 목청을 높였다.

주민 김재국 씨는 “정부가 연평도를 떠난 우리를 ‘이재민’으로 생각하는지, ‘피란민’으로 보는지 분명하게 구분해 처우를 해 달라”며 “정부는 일자리도 주고 살 곳도 마련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 씨는 “하늘에서 쉴 새 없이 포탄이 떨어져 피붙이 같은 이웃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화약고에서 더는 살 수 없다”며 “정부가 주거, 일자리, 교육 등 특단의 대책을 세우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순애 씨는 “앞집이 불에 타는 긴박한 상황에 슬리퍼만 챙겨 신고 겨우 빠져 나왔다. 귀가 먹먹하고 몸이 아픈데 병원에도 갈 수가 없다”며 찜질방이 아니라 제대로 된 숙소를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송 시장은 “서해 5도 특별지원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정부에 강력하게 건의하고 주민들을 도울 수 있는 대책을 세우겠다”며 “보상 문제는 당장 답변하기 어렵고 정부와 협의해 최대한 주민들을 돕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시는 행정안전부, 옹진군과 합동으로 25일 주민 피해 상황을 조사 한 뒤 30일 열리는 국무회의에 예산지급안을 임시 안건으로 올려 예비비를 주민에게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평도 잔류 주민으로 구성된 연평주민비상대책위원회 최성일 위원장(47)은 이날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구호품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남은 주민들에게 인천으로 나갈 것을 권유하고 있다”며 “섬에 남겠다는 주민만 제외하고 모두 섬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28일 한미 해상훈련이 예정돼 있어 남은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25, 26일 여객선을 타고 떠나면 연평도에는 20명 정도 남아 섬이 텅 빌 것”이라고 덧붙였다. 옹진군에 따르면 930여 가구 1780여 명 중 현재 연평도에 남아 있는 주민은 70여 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편 연평도를 빠져나온 주민들은 자식들이나 친척집, 또는 찜질방 등에서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150여 명은 연안부두 근처 찜질방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지만 고향 집 걱정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TV 뉴스를 보던 주민들은 화면에 파괴된 고향마을이 나타나자 “억장이 무너진다” “저기 우리 집이 불탔네”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잠자리에 들었던 50여 명은 온풍기를 가동하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주민 김영애 씨(50)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에도 주민들이 깜짝 놀란다”며 “포격 당시 끔찍한 기억이 계속 떠오른다”고 말했다. 주민 대부분은 “당장 앞으로 어떻게 먹고사느냐”며 “생업이 연평도에 있지만 무서워 돌아갈 수도 없어 막막하다”고 한숨을 지었다.

25일 오전에는 옹진군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 2명과 간호사가 찜질방에 묵고 있는 주민들을 찾아 진료했다. 공중보건의 유정우 씨는 “포격 소리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거나 지속적인 불안감을 호소하는 주민이 많았다”고 전했다.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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