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시험대서 크게 다친 ‘세종시 총리’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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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총리 ‘최대 피해자’ 지적

박근혜, 영향력 재확인 ‘성과’…“유연함 부족” 평가는 부담
수정안 추진 선봉 정몽준, 향후 당내입지 위축 가능성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세종시 수정법안은 앞으로 정치권의 지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시 정국의 한복판에서 뛴 주요 플레이어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 최대 피해자는 정 총리?

외형적으로 이번 표결을 통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은 정운찬 국무총리다. 정 총리가 세종시 수정안의 불씨를 지펴 ‘세종시 총리’로 불릴 정도로 세종시 수정안 추진의 선봉에 서왔기 때문이다. 정 총리가 주도한 수정안이 결국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산된 것은 정 총리에겐 정치적인 첫 시험대에서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정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 부결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추진한 정책 어젠다를 잃게 됐다. 정 총리가 자신의 고유한 어젠다를 잃은 만큼 교육과 경제 등 다른 주요한 이슈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때문에 총리로서 국정 추진력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정 총리가 평소 가졌던 진보적인 색채도 진보진영이 수정안 추진 과정에서 등을 돌림에 따라 퇴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충남 공주 출신인 정 총리는 수정안 추진 과정에서 충청권 야당 의원들에게 ‘매향노(賣鄕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정치적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출신 지역 주민들에게 비난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은 정 총리에겐 큰 손실이다.

청와대 일각에선 정 총리가 세종시 문제를 가장 먼저 꺼낸 만큼 국회 부결에 따른 책임을 지고 정치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정 총리 주변에서는 이미 정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간접적으로 사의를 표명했으나 이 대통령이 만류해 정리된 만큼 정 총리는 세종시 문제와 상관없이 국정과제 추진에 매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 박 전 대표, 약속의 정치인 vs 고집의 정치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국민과의 약속’을 내세우며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일단 자신이 반대한 세종시 수정법안이 부결돼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점을 재확인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가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인식도 부수적 성과물이다.

하지만 수도권과 영남권 등에서는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유연함’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적잖은 것은 앞으로 박 전 대표가 넘어야 할 산이다. 친박(친박근혜)계 내부에서도 “세종시 수정안에 강하게 반대해온 박 전 대표에 대해 ‘부정의 이미지’가 강화돼선 안 된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세종시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박 전 대표에게는 이 대통령과 쌓인 감정의 골과 당내 계파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 과제가 남겨졌다.

○ 정 전 대표, 상처 속 재기 모색?

정몽준 전 대표도 이번 표결 결과로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게 당내의 대체적 평가다. 정 전 대표가 그동안 당내에서 세종시 원안을 고수한 박 전 대표와 각을 세우며 세종시 수정 추진의 최전선에 나섰지만 세종시 수정안이 무산돼 당내 입지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6·2지방선거 패배 이후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고 2선으로 물러난 상황도 그에게 운신의 폭을 좁혔다.

하지만 반론도 없지 않다. 그동안 세종시 전선에서 정 전 대표가 여권 주류인 친이(친이명박)계와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다는 점을 성과물로 볼 수 있다. 친이계의 지원 사격은 앞으로 정치적 재기를 모색할 때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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