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외풍’ 맞선 검찰총장 ‘자율 정풍’ 카드로 돌파구

  • Array
  • 입력 2010년 5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 김준규총장 상설특검-공수처 사실상 반대


검찰 불신 인정했지만
“아무리 파마 안했다 해도 학교동창들조차 안믿어줘”


사정기능 약화는 반대
“국민의 통제를 받겠다”…英美日식 시민심사위 염두


검찰총장, 사법연수원 특강  김준규 검찰총장이 12일 오전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원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하고 있다. 김 총장은 이날 강연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상설 특별검사제 도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고양=원대연 기자
검찰총장, 사법연수원 특강 김준규 검찰총장이 12일 오전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원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하고 있다. 김 총장은 이날 강연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상설 특별검사제 도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고양=원대연 기자
김준규 검찰총장은 12일 사법연수원 특강을 통해 ‘검사 향응·접대’ 의혹사건과 검찰개혁 방향을 놓고 청와대 및 정치권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우선 김 총장은 검사 접대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와 검찰 스스로 개혁방안 준비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권 내부에서부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상설 특별검사제 도입 논의를 제기한 것에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는 “검사들이 개혁의 대상만 돼서는 안 되고 주체가 돼야 한다. 검찰에서 시작된 폭탄주 문화가 나라 전체로 확산됐듯이 우리가 접대문화를 바꾸면 또 세상이 바뀌게 될 것”이라며 검찰이 자정 의지와 능력이 있음을 강조했다.

이번 ‘검사 향응·접대’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그 같은 모습들은 과거의 일이며 젊은 검사들이 경험하지도 못한 일로 충격을 받은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원래 곱슬머리인데도) 어디를 가도 자꾸 ‘곱슬머리냐, 파마머리냐’고 묻기에 머리를 짧게 잘랐더니 ‘원래는 더 곱슬한데 파마를 해서 폈다’는 등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더라”며 “학교 동창들조차 믿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른바 검사 향응·접대 사건이 오늘날 검찰의 모습이나 검찰 전체에 만연한 구조적인 관행이 아닌데도 이를 외부에 정확하게 알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취지였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검찰 내 폭탄주 문화에 대해서도 “검사 생활이 스트레스가 커 완충지대를 설정하느라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수처 또는 상설 특검을 도입해 검찰의 ‘힘’을 뺄 필요가 있다는 정치권의 요구에 대해서는 “정답이 아니다”라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대신 권력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면 그 주체는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대검찰청의 조직·문화 개선 태스크포스(TF)가 검토 중인 기소 및 수사 과정에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영미식 대배심이나 일본의 검찰심사회를 염두에 둔 것이다. 검사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보니 주변에 유혹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공수처나 상설 특검을 도입해 검찰 권한의 핵심인 고위공직자 사정(司正) 기능을 거세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얘기다.

김 총장의 이런 견해는 당장 청와대의 시각과도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은 “검찰 경찰 개혁이 큰 과제다”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범정부 TF를 구성해 검찰 개혁을 밀어붙이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강연을 원고 없이 진행했다. 하지만 강연에 앞서 “오늘 강의가 사법연수원생 여러분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어쩌면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검찰 권력에 대한 ‘견제’라는 단어를 강의 후반에 ‘통제’로 수정하는 등 자신의 발언 하나하나가 가져올 파장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또 공수처나 특검에 대해서도 구체적이거나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에둘러 말하는 등 자칫 청와대에 대한 ‘항명’으로 비치지 않으려 했다.

고양=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