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경제강국’ 슬로건 왜 쑥 들어갔나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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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엔 강성대국 대문 열 것” 10년간 공언해 와
경제목표 달성 힘들자 ‘미래 번영이 중요’로 물타기

‘강성대국 건설’ 구호를 내세워 10여 년간 주민들을 동원해온 북한이 정작 강성대국 달성을 공표해야 할 시한이 다가오자 기존 경제논리를 수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빈곤 속에 강성대국 달성을 외쳐야 할 처지가 확실시되자 ‘물타기식 논리’를 개발해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대목이다.

○ 쑥 들어간 ‘경제 강국’ 논리

‘강성대국 건설’은 ‘선군정치’와 함께 지난 10년간 북한 주민들을 선동해온 핵심 구호이다. 1998년 강성대국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북한은 오래전부터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고 공언해 왔다. 북한은 최근까지도 강성대국 건설의 핵심 목표를 ‘경제강국 건설’에 두었다. 강성대국은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을 합친 것인데, 정치사상강국과 군사강국은 이미 달성했기 때문에 앞으로 경제만 강국으로 만들면 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최근 북한 매체들에서 경제강국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북한의 대외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27일 ‘주체의 사회주의강성대국의 징표’라는 글을 실으면서 경제강국이라는 단어를 빼고 강성대국을 설명한 것. 이에 따르면 “강성대국은 영토의 크기나 인구수, 사회생활의 일정한 분야가 높은 단계에 이른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또 국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사상적 힘이며, 군사력은 ‘핵심구성부분’이지만 경제적 힘은 ‘중요구성부분’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경제에 대한 중요도는 세 번째로 처졌다. “극소수가 나라의 권력과 재부를 독차지하고 특권과 억만 재부(財富)를 향유하는 나라는 부흥번영하고 강대한 나라라고 할 수 없다”고 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최근 화폐개혁과 부동산관리법 등 잇따른 조치로 장마당에서 돈을 번 시장경제 세력을 축출하고 있는 북한이 이를 강성대국 건설 논리에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 강성대국의 모호한 경제수준

최근 나온 강성대국 논리 중에 눈에 띄는 또 다른 대목은 평가 기준에 “오늘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부강 번영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들어간 점이다. 비록 지금 못살아도 앞으로 번영할 수 있다면 곧 강성대국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논리라면 북한이 당장 강성대국이 됐다고 선포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 앞으로도 지금 같은 폐쇄정책을 계속 유지하면서 선진국을 보여주는 대신 못사는 나라들의 생활수준을 보여주면서 다른 나라보다 잘사는 강성대국이 됐다고 선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북한은 지난 10여 년간 끊임없이 경제강국을 외쳐 왔지만 달성해야 할 경제수준의 목표를 한번도 정확히 밝힌 적이 없다. 그저 ‘인민들이 세상에 부러움 없이 사는 나라’라는 추상적인 단어만 나열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북한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강성대국의 경제수준을 선진국과 비교할지 아니면 자체 기준으로 평가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정확한 목표가 없는 강성대국 논리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많은 북한 주민들 속에 오래전부터 퍼져 있는 상황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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