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 난 北, 제재공조 깨려 ‘미끼’ 던진 듯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4일 03시 00분


■ 대화공세 어디까지
5자 ‘핵해결 우선’ 압박에 南엔 정상회담으로 접근… 美에는 이근 보내 러브콜

북한의 대외 유화정책이 3개월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접촉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올봄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한반도 주변 대화 분위기에 심대한 변화의 기류가 엿보인다. 북한의 대화 공세의 속셈은 무엇이며, 어디까지 진행될까.

○ 전방위 대화 공세로 얻을 보따리는?

북한의 전방위적 대화 공세는 6자회담 참가국 중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5자 공조체제 와해용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6월 12일) 후 북한은 제재의 위력을 충분히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구매하려던 호화 요트 계약금이 압수되고, 무기 수출 거래선도 막히자 더욱 초조한 지경으로 몰렸다는 관측이다. 결국 북한은 제재의 틀을 형성하고 있는 5자 공조를 깨뜨려야 생존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유화적인 태도로 돌변했을 개연성이 크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23일 북한의 최근 움직임을 △남한에는 정상회담 가능성으로 접근하고 △미국엔 비핵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중국에는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을 흘리며 △일본에는 납북자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는 식으로 분리 접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북한의 태도를 비핵화 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하는 건 오판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여전히 6자회담 복귀에 앞서 북-미 양자대화를 통한 ‘북한식 문제해결’ 방안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6자회담이 다른 참가국과 북한 간의 5 대 1 구도로 진행되는 것에 불만을 가진 북한은 북-미대화로 미국과 협상을 벌이고 6자회담에는 구색 갖추기로 나서 지원을 얻어내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남한과의 정상회담 준비 움직임의 목적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재개 등을 통해 대북지원을 확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후계체제를 인정받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 북한의 낚시질에 끌려갈까?

북한이 전방위적 대화 제의 공세를 펼치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얻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5자는 ‘그랜드바겐’을 이끄는 두 축으로 대화와 제재를 명시적으로 밝혀왔다. 이는 북한과의 대화에는 열린 자세로 응하며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은 스티븐 보즈워스 북한정책특별대표와 북한 고위급 관리의 양자접촉을 장차 기정사실로 한 상태에서 이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의 미국 방문을 허용했다. 대화의 창을 열어놓은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들어보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관련 접촉에 응했다면 그 역시 미국과 비슷한 생각일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언제 어떤 수준에서든 남북간의 모든 문제를 대화하고 협력하자”며 정상회담을 포함한 모든 대화가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대화에 대한 남측의 접근방법이 과거와 달라진 것만큼은 틀림없다. 정부는 북한의 대화재개 의사만으로 제재를 풀었던 과거와는 달리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관계 개선도 어렵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5자 참가국도 그런 원칙을 분명하게 유지하고 있어 북한이 당면한 국제정세는 이전 북핵 위기의 분기점 때와는 판이해진 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강성대국 건설의 해로 제시한 2012년을 앞두고 후계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는 북한으로선 조바심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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