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임경묵]‘南식량지원 - 北이산상봉’ 동시 추진을

  • 입력 2009년 10월 1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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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만 해도 북한 주민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800만 명 정도가 심각한 굶주림에 시달린다고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보고하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가 국제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다. 굶주림을 앞에 두고 사람의 도리를 다해야 하지만 대북(對北)이라는 말이 붙으면 왠지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과거 정부 10년 동안 잘못 추진한 인도적 지원사업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난달 30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과거 정부 10년 동안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민간단체가 대북지원금으로 8조3805억 원을 제공했다고 한다. 현대그룹이 2000년 정상회담추진 대가로 지급한 4억5000만 달러는 제외한 액수이다.

우리를 더욱더 안타깝게 하는 점은 이렇게 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의 인도적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 주민은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는데도 정권은 150일 전투, 100일 전투와 같은 대규모 주민동원사업에 열을 올리면서 강성대국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북한 주민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마저 박탈당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셈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김정일 정권이 북한 주민의 생존을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을 절감하지 않는 한 인도적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선한 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흔쾌히 할 수 없는 현실도 문제다. 북한정권은 국제사회의 원조를 이른바 ‘평화적 이행전략’의 일환으로 간주한다. 북한이 말하는 평화적 이행전략이란 탈냉전기에 제국주의에 의한 새로운 와해전략이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북한정권은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에 대해 모기장식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심각한 인도적 재난상황에 빠진 북한주민의 생존과 인권을 도외시하는 일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훗날 통일한국이 달성되었을 때 북한지역 주민이 “우리가 굶주릴 때 당신들은 배불리 살면서 무엇을 주었는가”라는 원성을 토해낼 만큼 인색해서도 안 된다. 인도적 지원은 하되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정권으로 하여금 국제사회의 보편적 룰에 맞는 수혜국의 의무를 지도록 해야 한다. 의무를 이행하는 만큼 지원 양을 조절하는 러닝개런티 제도를 도입하자는 뜻이다. 인도적으로 취약한 지역과 계층을 우리가 정하고 분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모니터링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명한 원칙을 북한에 요구하고 북한이 수용하는 만큼 지원해야 한다.

둘째, 인도적 지원사업에서도 상호주의를 철저하게 관철시켜야 한다. 납북자 국군포로 이산가족 같은 해결되지 않은 인도적 사안이 있다. 남북한의 인도적 사안을 대칭적이고 등가적으로 따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동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국민의 혈세로 추진되는 만큼 국민적 공감대가 필수적이다.

셋째, 우리 내부적으로도 대북 인도적 지원을 둘러싼 정쟁과 남남갈등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 매뉴얼을 수립하고 이에 입각하여 인도적 지원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매뉴얼은 어떤 상황을 인도적 상황으로 규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 지원해야 할 것인지를 상황별로 상세한 액션플랜을 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도적 지원 물량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 북한 식량 소비량의 한 달 치를 지원하는 방안은 인도적 범위에 해당하지만 그 이상은 검토가 필요하다. 대규모 식량 부족은 북한 농업 구조개선 사업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임경묵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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