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이냐 국민장이냐’ 원칙없어 혼란

  • 입력 2009년 8월 25일 03시 06분


대상-절차 정해 사회적 낭비 줄인다

■ 관련법 개정추진 배경

정부가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 개정에 나선 것은 국장이냐 국민장이냐에 따라 국고 지원과 휴무일 지정 등 법적 조치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국장, 국민장 대상자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 국장과 국민장 대상은 누구?

현행법 제2조는 ‘이 법에 의한 장의는 국장과 국민장으로 구분한다’고 규정하면서도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이 결정하게 하고 있다. 동국대 최정일 교수(법학)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1967년) 만들어진 법이어서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돼 있을 뿐 법으로 기준을 마련하지 않아 실제 적용 때는 혼선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번 국장의 실무를 담당한 행정안전부도 모호한 법 규정과 유족 측 요구 사이에서 장례 준비 과정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내부적으로는 국민장으로 치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는 물론이고 현재 생존하고 있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의 사후 형평성을 고려해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러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유족 주장에 따라 국장으로 바꿨다. 김 전 대통령의 병세가 위중하다고 알려졌을 때에도 국장인지 국민장인지 판단할 수 없어 실무 준비는 늘 제자리일 수밖에 없었다.

○ 법 형식과 명칭의 미비

국장, 국민장의 명칭 자체가 적합하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현행법상 국장은 영결식 당일이 공휴일로 지정되고, 국장 기간 내내 조기를 게양해야 한다. 장례 기간도 9일 이내로 규정되는 등 국민장보다 한 단계 높은 예우를 받게 돼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이 ‘국가’의 하위개념이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1967년 1월 제정된 현행법은 시행령만 두고 있을 뿐 상세한 장의 절차를 규정하고 있어야 할 시행규칙은 아예 없다. 이 때문에 명확한 ‘규정’보다는 모호한 ‘관례’에 따라 국장이나 국민장을 치러왔다.

미국은 이런 논란이 일지 않도록 국장과 국민장을 구분하지 않고 ‘국가장(State Funeral)’으로 통일해 수용 여부를 가족에게 일임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 세부 장의 절차도 명확한 규정이 없어

국장의 핵심 절차인 영결식의 구체적인 순서나 운구 경로 지정 등에 대해서는 시행령에도 아무 규정이 없다. 이번 국장 때는 남녀 사회자를 선정하고 추도사를 낭독하는 등 노 전 대통령 국민장에는 없던 의식이 추가되기도 했다.

묘역 위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행법 시행령 제2조는 묘역 위치 등을 장의위원회가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원회 산하 기구로 편성된 행안부는 이번 국장의 묘역 위치에 대해 국가원수 묘역이 조성된 국립대전현충원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국립서울현충원을 원하는 유족 측 요청을 수용했다.

숭실대 강경근 교수(법학)는 “국가 주관 장례 여부를 유족의 뜻에 따를지, 국가가 법으로 정할지 등 근본적인 문제를 법으로 명문화해야 법치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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