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민주화 위한 NGO-탈북자 역할 강화에 여생 바칠 것”

  • 입력 2009년 8월 10일 02시 59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운데)가 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를 방문해 북한 문제를 연구하는 동아일보 사내 학습모임인 ‘남북한 포럼’ 소속 기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1층 로비를 둘러보고 있다. 황 전 비서의 왼쪽은 김일성대 출신으로 탈북해 편집국 국제부에서 일하고 있는 주성하 기자. 황 전 비서의 뒤로 동아일보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의 동상과 사진이 보인다. 원대연 기자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운데)가 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를 방문해 북한 문제를 연구하는 동아일보 사내 학습모임인 ‘남북한 포럼’ 소속 기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1층 로비를 둘러보고 있다. 황 전 비서의 왼쪽은 김일성대 출신으로 탈북해 편집국 국제부에서 일하고 있는 주성하 기자. 황 전 비서의 뒤로 동아일보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의 동상과 사진이 보인다. 원대연 기자
■ 본격 외부활동 첫발

“美, 이라크전쟁 치르며 1800억 달러 썼다는데… 北민주화는 절반이면 가능”
인터뷰 요청 1년 만에 수락… 통합 탈북자기구 14일 출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는 1997년 4월 한국에 온 이래 자신의 ‘인간중심철학’을 체계화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북한민주화 운동을 펼쳐왔다. 그가 7일 동아일보사를 방문한 것은 북한 민주화를 위한 자신의 행보를 공식화하는 첫 발걸음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는 비정부기구(NGO)와 탈북자들을 통한 북한민주화 운동에 여생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 12년 만의 국내 언론사 첫 방문

황 전 비서는 7일 오후 2시 수행원들과 함께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았다. 그는 김학준 회장 등 본사 간부들을 만나 “어릴 때(1936년 8월)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및 일장기 말소 사건 소식을 들으며 동아일보를 처음 알게 됐다”며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인 본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을 회고했다.

그는 본보 최남진 화백이 직접 그린 캐리커처(인물 만화)를 선물로 받았다. 황 전 비서가 북녘 주민들을 생각하는 듯 다소 우울한 표정으로 ‘자유’라는 파란 글씨가 적힌 비둘기를 휴전선 철조망 넘어 북녘 땅으로 날려 보내는 그림이다. 황 전 비서가 한국 언론사를 처음 방문한 것은 10년 만에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8월 황 전 비서가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하고 집필과 강연, 친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기로 결정했다. 본보는 당시 황 전 비서의 측근들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그때엔 “아직은 한국 언론에 나설 때가 아니다”라고 고사했다. 그러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알려지면서 언론을 통한 적극적인 현실 참여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비서는 본보의 제안을 지난달 1년 만에 전격 수락했다.

○ 안보의식 고취 위한 다양한 활동 계획

북한민주화 운동에서 NGO와 탈북자들의 역할을 강조한 황 전 비서는 요즘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북한민주화위원회(www.cdnk.co.kr)를 중심으로 국내 30여 개의 탈북자 단체를 통합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탈북자단체 대표들은 7일 모임을 갖고 북한민주화를 위한 통합기구인 ‘탈북자와 북한의 미래를 준비하는 단체협의회’(가칭)를 14일 출범하기로 했다. 협의회는 탈북자들의 권익을 증진하고 통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대표기구를 지향하고 있다. 발족하는 대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탈북자 문제에 관한 토론회를 연 뒤 결집된 의견을 건의문으로 만들어 정부에 제출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황 전 비서는 본사 강연에서 “미국이 이라크전쟁에 1800억 달러를 썼다고 하는데 나에게 900억 달러만 줘도 북한민주화를 성공시킬 자신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그는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면 먹고사는 데 급급해 공부할 시간이 없다”며 “유능한 탈북자들이 오면 잘 교육해 북한을 각성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보의식 고취를 위한 다양한 외부 활동도 벌일 예정이다. 그는 “우리 앞에는 북한 독재집단과 그 추종자들의 사상적 뿌리라고 볼 수 있는 ‘계급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근본적으로 극복하고 올바른 민주주의 이념을 확고히 고수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각종 공개 대중 강연과 언론 매체 등을 활용한 강의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 남북의 사선을 넘은 철학자 인생

철학자인 그는 “철학은 이론적인 정치이고 정치는 실천적인 철학”이라며 현실정치에서 철학을 실천하는 문제를 늘 고민해 왔다. 그는 서울에 온 이후 북한민주화를 위한 남한과 국제사회의 역량 강화, 그리고 전략전술 개발을 위한 연구 및 저술 활동에 몰입해 왔다. 우선 수령 절대주의 사상으로 왜곡되기 이전에 자신이 주창했던 순수한 ‘인간중심 철학’을 체계화했다.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 사회역사관, 인생관의 철학적 체계를 말한다. 그는 2001년 각각 ‘세계관’ ‘인생관’ ‘사회역사관’을 펴냈으며 이를 북한민주화 등 현실문제에 접목한 ‘민주주의 정치철학’(2005년)과 ‘변증법적 전략전술론’(2006년)도 출간했다. 또 일련의 저서를 체계적으로 종합한 ‘인간중심철학원론’을 지난해 펴냈다. 그는 이론적 토대를 집대성한 데 이어 이제는 자신의 철학을 실천할 때라고 판단하고 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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