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전대통령의 공과

  • 동아닷컴
  • 입력 2009년 5월 23일 17시 22분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8년 정치에 입문한 후 지난해 대통령에서 퇴임할 때까지 20년 동안 한국 정치사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그는 5년간의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각 분야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정작 자신은 정작 불법자금 수수 혐의에 휘말려 스스로 삶을 포기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많은 분야에서 투명성과 도덕성을 높이는 성과를 냈다. 어떤 역대 대통령도 추진하지 못했던 '탈권위주의'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이념에 치우쳤다는 비판도 받았다.

●"투명성 제고와 탈 권위에 앞장섰다"

전문가들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개혁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진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록 노 전 대통령 자신은 '도덕성의 함정'에 빠져 불행한 일을 맞았지만 재임 기간 중 정치 사회 경제 전반의 투명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성과가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핵심 권력기관을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아 전반적인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역대 정권과 달리 검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았다"며 "이를 통해 '대통령직의 민주화'와 '탈권위주의'를 실천한 첫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그러나 재임 기간 내내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탈권위주의'가 '탈 권위'로 변질되면서 스스로 대통령으로서의 품격을 무너뜨렸고 결과적으로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이념과 사회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육학과 교수는 "약자를 배려하고 인권을 존중하려는 노력은 크게 평가받아야 한다"면서도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국민통합도 함께 추진했어야 했지만 두 어젠다가 분리되면서 사회갈등을 촉발하는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한반도 긴장 완화, 한미 관계는 악화"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에 이바지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이어온 '대북 퍼주기'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전 6·15 남북공동선언보다 구체화된 합의내용을 담은 10·4 남북정상선언을 이끌어냄으로써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6자회담이라는 틀을 통해 북한 핵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도 노력했다"면서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에 집착한 나머지 무리한 지원 약속을 해 다음 정부에 큰 부담을 줬고 결과적으로는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미동맹 관계 또한 그의 재임 시절 크게 악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미관계에서 급성장한 한국의 위상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과정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했다.

●"시장주의 원칙과 성장 잠재력 훼손"

경제 분야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분배 중심의 경제정책을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 사회양극화를 초래하고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존의 성장위주의 틀에서 벗어나 분배 문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균형 잡힌 경제관을 확립시킨 것은 평가할 만하다"며 "그러나 부동산 분야 등에서 시장원칙에 반하는 '이념 중심의 정책'을 쏟아내 시장을 왜곡하고 특정 계층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쓴 것은 아쉬웠다"고 말했다. 김종석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균형 잡힌 경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한 공이 있지만 세계경제 호황 속에서 평균 경제성장률에 못 미치는 성장을 했고 투자가 줄어 성장잠재력이 잠식됐다"고 말했다.

중앙대 홍기택 경제학과 교수는 "불법 정치자금의 고리를 끊기 위해 노력해 대기업과 정치인 간의 정경 유착의 고리는 상당 부분 끊겼다"며 "시장의 기능을 훼손하는 정책들을 쏟아내 자본주의 기본 질서에 타격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한 지방 균형발전 정책의 기본 취지는 좋았지만 행정중심도시나 혁신도시 정책은 효율성을 떨어뜨리면서 땅 값을 올리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말했다.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

홍수영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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