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 김정운’ 믿을 수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4월 28일 02시 55분



2003년 ‘백세봉’ 임명때
잘못된 후계 추측 쏟아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정운 씨(26)는 진정 김 위원장의 후계자일까. 그가 이달 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 직전에 국방위 조직지도원에 임명됐다는 첩보에 대해 정부가 확인에 나서면서 ‘3남 후계자 지명설’이 정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내부 정보는 매우 은밀해 공식 발표가 있을 때까지 단정할 수 없다”며 후계자 문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이들은 특히 2003년 돌연 국방위원에 임명돼 차남 정철 씨 등 김 위원장 아들의 가명이라는 구구한 추측을 불러일으켰던 ‘백세봉(사진)’ 사건을 예로 들었다.
2003년 9월 3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11기 1차 회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방위원 가운데 마지막으로 ‘백세봉’이라는 이름을 공개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정보 당국조차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북한 정치·인물 전문가인 이기동 박사(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는 북한의 엘리트 충원 과정에 비춰 국방위원이라는 고위직에 전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고 보고 추적 작업을 시작했다.
이 박사는 “백 위원이 아주 비밀스러운 일을 하거나 매우 중요한 사람의 가명일 수 있다”고 결론짓고 “가명일 경우 김 위원장의 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근거는 이름 풀이였다. 백세봉은 ‘백두산 세 봉우리’의 약자로서 백두산 3대 장군인 김일성 주석과 부인 김정숙, 아들 김정일이라는 추정 아래 백세봉을 가명으로 쓴 인물은 3대 후계자일 수 있다고 봤다. 이 박사는 2004년 2월 20일 동국대 북한학연구소가 개최한 국제학술회의에서 이런 추정을 발표했다.
학술회의 사흘 전인 1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당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정세현 통일부 장관에게 “백세봉은 김정철의 가명으로 군수(軍需) 담당자라는 정보가 있다”며 설명을 요구했다. 이 박사와 정 의원의 주장은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달 10일과 11일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이 각각 백 국방위원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면서 논쟁이 끝을 맺었다. 노년인 그는 외관상으로도 김 위원장의 자식이 아님이 분명했다. 이 박사는 2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2007년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해 백세봉이 실제 인물이며 북한 군 경제를 담당하는 제2경제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며 “2004년 추정의 절반(비밀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만 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국내 언론에는 2008년 1월 관련 내용이 보도된 바 있다.
한편 국내의 북한 후계문제 전문가들은 정운 씨 지도원 임명설도 아직 더 확인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철-정운 씨 후계 가능성을 점쳐온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정운 씨가 후계자로 지명됐다면 국방위 지도원은 지나치게 낮은 직책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이후 장남인 정남 씨 후계자론을 펴온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센터장은 “장성택 신임 국방위원이 ‘킹 메이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정운 씨를 후원한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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