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도 ‘타워팰리스’ 있다

  • 입력 2009년 4월 24일 03시 02분


나진-선봉에 남한 가치로 43억 초호화 아파트 작년 등장

300㎡ 크기 10가구, 정전 없고 온수도 콸콸

5억 웃돈 주고 사기도

외화벌이 사장 주로 입주

북한에도 ‘타워 팰리스’라고 불릴 만한 초호화 아파트가 등장했다. 돈을 번 부유층의 소비욕구는 북한이라고 예외가 아닌 것이다. 한쪽에선 여전히 초근을 캐먹는 사람이 많으며 아사자도 발생하고 있다. 만민평등을 표방하는 북한에서 갈수록 심화되는 ‘부익부빈익빈’의 현주소를 진단해 본다.

○ 노동당 간부도 입주 엄두 못 내

1991년 북한 최초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된 함경북도 나선(나진-선봉)시에 지난해 4만 달러짜리 아파트가 등장했다. 지방 당국이 땅을 제공하고 중국 업체가 지은 뒤 분양수익을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건설됐다. 최근 들어 거의 모든 주택을 사고팔 수 있는 북한에서 2만 달러 이상의 아파트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5층짜리에 총 10가구인 이 아파트의 가구별 면적은 300m². 평양의 초호화 아파트도 200m²가 넘기 힘든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대형이다. 여기에 중국 회사가 나선에서 직접 생산하는 전기를 단독으로 공급받아 정전을 모르며, 온수까지 콸콸 나온다. 소파와 커튼에 양변기와 욕조까지 갖추었다. 북한에선 상상할 수 없는 편의시설을 갖춘 셈이다.

완공된 뒤 호화로움에 놀란 지방 간부들이 “보는 눈이 많은데 다신 이런 아파트를 건설하면 안 되겠다”고 말할 정도라고 북한 소식통은 전했다.

이 아파트는 인기가 높아서 분양가는 4만 달러였지만 웃돈을 얹어주고 4만5000달러에 산 사람도 있었다는 것. 북한에서 부유층은 주로 달러로 거래한다. 1달러는 북한 돈으로 3700원 정도여서 큰 거래일 경우 부피가 많은 데다 북한 돈은 계속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고급 아파트들은 대개 권력 서열 순으로 할당되지만, 이 아파트는 워낙 비싸 합법적으로 돈을 벌었음을 증명하는 외화벌이 기업 사장들이 주로 입주했다고 한다.

이곳에 입주한 한 사장은 “어차피 우린 감시받고 사는데 내일 죽더라도 이런 아파트에서 한번 살다 죽겠다”고 말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그는 “북한엔 수십만 달러를 갖고 있는 부유층이 존재하지만 눈치를 보며 살다 보니 그들을 겨냥한 호화주택이 건설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덧붙였다.

주요 지방 대도시라고 해야 단층집을 사 1만∼2만 달러짜리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 경우가 고급 아파트에 속한다. 면적은 120m² 내외지만 북한에선 상당히 좋은 아파트다. 평양 부유층은 남의 눈에 띄는 집보다 다른 방식으로 소비욕구를 충족한다. 지난해 6월 평양에 문을 연 남한 찜닭 프랜차이즈 ‘맛대로촌닭’은 줄을 설 정도로 인기다. 대표 메뉴인 ‘평양칠향계’는 10달러 정도로 북한 위관급 장교 1년 치 월급에 해당한다.

○ 농촌 주민은 수십 달러 농가 생활

북한의 생활실태를 남한과 비교해 분석해 보자. 북한에서 옥수수밥이나마 매일 먹으면 평균 수준이다. 한 명이 한 해 평균 옥수수 180kg을 소비한다고 볼 때 4인 가족은 720kg 정도가 필요하다. 현재 북한의 옥수수 최고가격은 1kg에 800원이다. 여기에 북한 원-달러 환율 3700원을 적용하면 4인 가족은 1년에 식량 구입비로만 156달러를 써야 한다. 탈북자 등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선 평균 가계지출의 절반 정도가 식량 구입에 들고 나머지는 땔감 부식물 생필품 구입 등에 쓰인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보면 북한의 4인 가족은 1년에 300달러 정도를 소비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가 추정한 것과 비슷한 수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남한의 4인 가족 월평균 지출액은 약 319만 원. 연간 약 3830만 원(2만8500달러)쯤 된다. 북한의 4인 가족 평균 지출을 넉넉히 잡아 350달러라고 봐도 남한이 액수로 80배 이상 많다. 북한에서 4만 달러짜리 아파트에 웃돈 5000달러를 얹는다면 남한에서 320만 달러(약 43억 원)짜리 아파트에 40만 달러(약 5억4000만 원)를 더 얹은 셈이 되어 약 48억 원의 가치가 있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유추해 보면 현재 보통 1만∼2만 달러에 거래되는 평양 중심부 아파트는 남한으로 치자면 80만∼160만 달러, 즉 10억∼20억 원이며 2000∼3000달러에 거래되는 북한 지방 대도시 중심부 아파트는 2억∼3억 원짜리인 것이다. 북한의 농촌에는 수십 달러도 채 안되는 농가가 많다. 거주환경만 따져도 북한은 50억 원짜리 초호화 아파트를 가진 부유층과 몇백만 원짜리 집에서 사는 빈민층이 공존하는 남한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사회인 셈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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