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과속…차선위반…‘위기극복 속도전’ 靑 조율기능 고장

  • 입력 2009년 4월 18일 02시 58분


《‘속도전.’ 지난해 12월 초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속도전을 단행했다. 재정 조기 집행 등 어느 정도 성과도 나타났다. 이후 속도전은 현 정부의 국정 스타일로 각인돼 왔다. 그러나 4개월 남짓 지난 지금, 곳곳에서 ‘저속’ ‘과속’ ‘차선 위반’ 등이 벌어지고 있다. 당-정-청 소통이 부재하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여당 내에선 ‘속도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국정의 관심이 ‘발등의 불’을 끄는 데 집중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국정 과제들이 혼선 표류 엇박자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은 문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

■ 전문가 12인의 분석

1. 당정청 소통 이상기류

제각각 주장 혼선 노출…무기력 여당 ‘피로감’ 호소

2. 방향 모호한 정책

금산분리-양도세 문제 등…방침없이 불확실성 키워

3. 국민 공감대 확보 실패

정부의 확신-논리 부족…의견형성 주도 못해



17일 동아일보가 정치 경제 사회 분야 전문가 12인에게 들어본 결과 청와대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지적하는 이가 많았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대통령이 최종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며 각자 자기주장을 하다 보니 혼선이 생긴다”고 진단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타이어로 치면 가장 안쪽에 대통령이 있는 구조다. 모든 게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다. 하지만 행정부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입법 과정이 필요한데 당이 무기력하다. 당은 표를 의식하다 보니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구조도 아니다. 그런 데서 부조화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도 “부처 간 조율이 필요한 사안은 미리 한목소리로 통일한 뒤 세상에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정 기능 부재가 문제라는 것이다.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주체가 제각각이어서 혼선을 빚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는 “청와대를 비롯해 녹색성장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가 경제정책에 참여하다 보니 권한이 분산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 스스로 여의도와 거리를 두다 보니 장관 레벨에서 여의도를 설득하기가 어색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정부 정책의 모호함 및 이에 따른 신뢰 상실을 지적하는 이도 많았다. 강 교수는 “출범할 때 제시했던 어젠다를 접을 건지, 할 건지도 명확히 해야 한다. 금산분리, 양도세 감면 등에 대해 시장에는 기대가 있는데 명확한 방침이 나오지 않다 보니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서비스업 선진화 정책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을 예로 들며 “서비스업의 규제 완화라는 방향을 잡았으면 이해관계 문제에 연연해서는 안 되는데 정권 차원의 의지가 부족하다 보니 이해집단의 반대와 부처 간 이견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책 수립과 집행을 위한 여론 형성 노력의 미흡도 지적됐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자기 확신이 없고 국민을 설득할 만한 탄탄한 논리가 없다. 정부가 의견 형성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책 설정은 논리만으로 되지만 집행은 반드시 상대방이 있는 것이다”며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줄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몇 가지 조언을 내놨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집중과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는 “내부적으로 관료 조직을 통제할 ‘정치 자본’이 부족한데 목표가 너무 커서 괴리가 생긴다. 속도전은 제한된 것에만 사용한다는 인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 내 컨센서스를 좀 더 이루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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