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선전선동 빠르고 과감해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4월 14일 03시 01분



‘꽃파는 처녀’ 제작자 최익규 노동당 선동부장 임명이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올해 초부터 사실상 총감독을 맡은 ‘정치 쇼’가 장거리 로켓 발사(5일)와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9일)를 끝으로 절정을 넘긴 듯하다. 북한이 새해 벽두부터 대내외 선전선동을 강화하고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정치적 효과의 극대화를 노린 결과다. 일단 북한으로선 그동안 국제사회의 이목이 한반도 이북에 집중됐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할 만하다. 이 기간 북한 매체의 보도 행태는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체제 선전과 강화에 필요한 내용은 매우 과감하고 신속하게 그리고 풍부하게 공개했다. 이런 변화를 연출한 사람은 김 위원장의 오랜 측근이자 북한 문화예술계 원로인 최익규 노동당 선전선동부장(76). 1970년대 김 위원장의 혁명가극 ‘꽃 파는 처녀’를 영화로 만들었던 최 부장이 올해 초 현직에 등장한 뒤 북한 선전선동의 기본이 바뀌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과감, 다리저는 김정일 노출… 불굴의 지도자 홍보
신속, 로켓발사 단계마다 정보 공개… 효과 극대화
풍부, 김정일 공개활동 올 1분기 44회… 예년의 3배




▽과감성과 공격성=조선중앙TV는 9일 오후 훌쩍 늙은 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가 열린 평양 만수대의사당에 다리를 절며 나타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방송했다. 4월 정치 쇼의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이 절룩거리며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 주민과 국제사회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북한 언론은 이미 3월 20일 몰라보게 살이 빠지고 주름살이 늘어난 김 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 수영장을 방문한 모습을 과감하게 보도했기 때문이다.
수척해진 김 위원장의 스틸사진을 사전에 공개해 9일 동영상 공개에 따른 충격을 줄였다는 점에서 ‘예방주사’와 같은 효과를 노렸다는 평가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건강이 거의 회복된 김 위원장의 모습을 통해 ‘굴하지 않는 최고지도자’의 이미지를 대내외에 각인시키고자 하는 극적 영상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도 있다.
▽신속성=북한 방송은 7일 오후 장거리 로켓 발사 이틀 만에 5초 분량의 동영상을 내보냈다. 1998년 장거리 로켓 발사 당시 닷새 만에야 동영상을 공개한 것과 비교하면 꽤 신속하게 보도한 것이다. 이에 앞서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장거리 로켓 발사 장면을 시찰하고 찍은 기념사진을 하루 뒤인 6일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또 북한은 2월 16일 “무엇이 날아 올라갈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라는 조선중앙통신 보도 이후 단계마다 정보를 신속하게 공개해 로켓 발사의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조선중앙통신은 4일 오전 “인공위성을 곧 발사한다”고 마치 중계방송을 하듯 공개해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했다. 그리고 하루 만인 5일 로켓 발사를 감행한 뒤엔 신속히 발사 사실과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풍부함과 다양성=최 부장이 등장한 이후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 보도도 풍성해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김 위원장은 무려 44회나 공개 활동에 등장했다. 2007년 같은 기간의 16회, 2008년의 12회와 비교해 3배 이상 늘어났다.
북한 언론은 3월 22일에는 김 위원장이 중국의 고전을 북한판으로 개작한 가극 ‘홍루몽’의 제작 현장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혁명 선동대인 ‘피바다가극단’이 중국 중세의 세속적인 이야기를 가극으로 만들고 북한 매체가 이를 보도한 것은 북-중 친선 60주년을 맞아 북한이 중국에 보내는 구애(求愛)의 메시지라고 당국은 분석했다.
▽최익규 역할론=2005년 12월 문화상에서 해임된 최 부장은 이날 ‘홍루몽’ 보도에 김 위원장의 수행원으로 이름을 올려 자신의 ‘컴백’을 알렸다. 그는 올 1, 2월 현직에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최 부장은 긴박한 한 편의 액션영화처럼 국제사회의 관심을 한동안 북한에 집중시켰다. 당 선전선동부장은 언론과 문화 예술 등을 통해 북한 사회주의 체제를 강화 유지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최 부장은 김 위원장이 1960년대 이후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당의 문화예술 사업을 강화할 당시 실무를 맡았던 최측근이었다. 그는 복귀 이후 김 위원장으로부터 상당한 권한을 부여받은 것으로 관측된다. 과거 김 위원장의 지휘하에 ‘유격대 오형제’(1968년) ‘꽃 파는 처녀’(1972년) 등 혁명 가극들을 영화로 만들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고향인 함북 화대군의 무수단리 미사일기지에서 발사된 장거리 로켓을 주제로 나름의 재능을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 쇠락하고 후계 문제가 대두되는 과정에 북한 내부에서 대중매체와 문화예술을 통한 선전선동의 역할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민족주의와 주체사상 선전, 체제 정당화 등에 선전선동을 중요하게 활용했고 지난해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 이후 이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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