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1949년 건국-창군 시기, 해사-육사-공사 순으로 문열어

  • 입력 2009년 3월 18일 03시 00분


육해공 사관학교의 역사

육해공 3군 사관학교는 광복 후 대한민국 건국과 국군 창설 작업이 한창이던 1940년대 후반에 차례로 문을 열었다.

육군사관학교의 출발은 1946년 5월 1일 서울 태릉에서 88명의 학생을 선발해 개교한 조선경비사관학교였다. 경비사관학교에는 광복군과 일본군, 만주군 등에서 군 경험이 있던 청년들이 입학해 45일∼6개월의 교육을 받고 배출돼 창군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

1948년 9월 5일 창군과 함께 육군사관학교로 개칭된 후 첫 입학생인 생도 1기(1949년 입교)와 1950년 입학한 생도 2기는 육사 역사상 가장 ‘비운의 기수’로 꼽힌다.

1기는 1년 과정 졸업을 1주일 앞두고, 2기는 입교 20여 일 만에 6·25전쟁이 발발해 전장에 투입됐다. 육사도 일시 휴교했다. 생도 1, 2기는 전쟁에서 상당수가 희생됐고 생도 2기는 결국 졸업을 못해 영원히 ‘생도’로 남게 됐다.

육사는 전쟁 중인 1951년 10월 경남 진해에서 다시 문을 열고 생도를 받았다. 이들이 ‘정규육사 1기’라는 육사 11기다. 당시 육사는 교육제도와 운영방식에서 미국 육사를 모델로 삼았다.

해군사관학교는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손원일 제독이 1946년 1월 17일 진해에 세운 해군병학교가 모체다. 이 기준으로 보면 해사의 역사가 가장 길다. 이후 조선해안경비대 사관학교와 해사대학, 해군대학으로 명칭이 바뀌다 1949년 지금의 명칭으로 확정됐다.

공군사관학교는 1949년 경기 김포에서 항공사관학교로 문을 열어 1기 97명을 뽑은 후 공군이 독립하자 공군사관학교로 명칭을 바꿨다. 1958년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에 자리를 잡았다가 1985년 충북 청원군으로 이전했다.

1955년 10월 사관학교설치법이 제정돼 사관학교 졸업자도 일반 대학 졸업자처럼 학위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이학사 학위만을 수여했으나 현재는 전공에 따라 공학사와 문학사도 주고 있다.

3군 사관학교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는 여자생도의 입교 허용. 가장 먼저 공사가 1997년 2월 여생도를 뽑았다. 현재 3군 사관학교는 정원의 10% 안팎에서 여생도를 뽑고 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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