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의 장막’ 걷어내니 “이제 정치 좀 알겠다”

  • 입력 2009년 3월 14일 02시 58분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그는 요즘 18석의 소수 정당 총재로서 과거 제왕적 총재의 이미지를 상당 부분 걷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그는 요즘 18석의 소수 정당 총재로서 과거 제왕적 총재의 이미지를 상당 부분 걷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주요 현안마다 대쪽 발언… 달라진 이회창

■한나라 총재시절엔 핵심측근만 만나 소통 차단

의원도 4단계 거쳐야 통화…장시간 고민하다 결단 늦어

■18석 선진당 이끄는 지금은

각계인사 만나 의견 구하고

현장-당직자와 수시로 접촉

절묘한 시점 與野政에 일침

“저 이회창입니다. 행정실장 좀 바꿔주세요.”

“네? 아, 총재님?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최근 당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실무자를 찾는 일이 잦다. 이 총재의 전화를 받은 당직자들은 처음엔 많이 놀랐다. 하지만 요즘엔 이런 전화에 익숙해졌다.

정치권에서 “이회창이 달라졌다”는 말이 많이 들린다. 2002년 대선 직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에서 그는 ‘제왕적 총재’였다. 그런 권위적인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고 측근들은 입을 모은다.

변화는 주변과의 활발한 접촉에서 시작됐다. 이 총재는 종종 토요일 오전에 근무하고 있는 당직자들을 불러내 주변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나라당 시절부터 이 총재를 봐왔다는 당직자 A 씨는 “6년 전보다 많이 웃고 농담도 늘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모습은 한나라당 총재 시절엔 상상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18석의 소수 야당을 이끄는 이 총재가 주목받는 것은 이런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여야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현안에 대해 이 총재가 한마디씩 하는 발언은 촌철살인(寸鐵殺人)일 때가 많다.

용산 참사가 터졌을 때다. 그는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정치 쟁점화하려는 민주당의 시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신영철 대법관의 e메일 파문 때도 마찬가지다. 이 총재는 “판사들에게 메일을 보낸 것이 부적절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민주당을 겨냥해선 “신 대법관에 대한 야당의 탄핵 주장은 경거망동”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정치 재판관 같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이해가 엇갈리는 쪽에서는 “뻔한 양비론 아니냐. ‘대쪽’이 ‘무소신’으로 바뀌었다”는 폄훼도 없지 않다.

주요 현안에 대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시의 적절히 발언하는 것도 이 총재의 말에 무게를 실어준다.

10일 아침 이 총재는 예정에 없던 당5역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정부와 여당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초(超)근시증 환자와 같다”고 여권을 꼬집었다. 이날 새벽 론 커크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내정자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의 필요성을 시사하자 비준을 서둘렀던 정부 여당을 비판한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이 총재의 보좌역을 지낸 한 정치권 인사는 “예전엔 이 총재가 혼자 고민하다 결단의 시기를 놓칠 때가 많았지만 최근엔 과감하고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총재의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 대해 주변에서는 “‘인(人)의 장막’이 걷혔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한나라당 총재 시절엔 일부 측근만 주로 접촉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얘기를 듣는다는 것이다. 신 대법관 문제가 터졌을 때는 전직 법원장 출신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하기도 했다.

瑩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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