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구자룡]김정일 건강악화 누설한 中학자의 ‘실종’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23일 02시 54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악화설을 언론에 알린 중국 사회과학원 소속의 학자 한 명이 지난달 말 실종돼 어딘가에 ‘연금 상태’에 놓여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서방 언론이 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에 이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그가 직위에서 해제됐으며 평양에 관한 정보를 넘겨주는 대가로 돈과 향응을 받은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자가 몇 명에게 수소문해 본 결과 그는 지난해 말 이후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고 지난 춘제(중국 설날) 때도 고향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정황을 볼 때 그의 ‘실종’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나라에서든 학자가 수사 기관이나 감독 기관에 불려가 조사를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중국에선 누구도 그가 왜, 어디서, 어떤 조사를 받는지 확인해 주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서방 언론이 이를 ‘실종’이라고 보고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쓰촨(四川) 대지진이 났을 때 그야말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재난현장을 찾아다니며 보도해 독자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던 중국의 많은 언론도 이런 ‘실종’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짐작이 간다. 중국에서는 학자나 고위공무원 등이 정보누설 등의 혐의로 어느 날 ‘실종’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국가의 정보누설에 대해 단속하고 조사하는 것은 어느 국가 정부나 당연히 해야 할 임무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서방 선진국에서 지명도 있는 학자나 고위 관리가 수개월 또는 1년 이상 당국의 조사를 받으며 ‘실종’됐는데도 당국이 정보를 확인해주지 않는다면 어떨까.

더욱이 김 위원장의 건강악화 발언이 문제라면 이미 지난해 중반 이후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이번 중국 방문에서 인권 문제를 강하게 거론하지 않은 것에 대해 국제인권 단체가 항의한 것도 일견 수긍이 간다.

중국은 지난해 독일을 제치고 제3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최근 미국의 보호주의 회귀를 맹타하는 등 자유무역의 선봉자로 나서고 있다. 중국은 이제 정치 경제 문화 등 어느 분야에서 견주어 보아도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하지만 또 한 명의 학자가 ‘실종’되는 것을 보면서 대국으로 가는 중국의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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