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풀라는데 돈이 없어…” 지자체 예금깨고 빚내 충당

  • 입력 2009년 2월 12일 02시 55분


세수 50% 줄었는데 국고지원은 소걸음

가용자금 1년새 400분의 1토막 된곳도

“행정절차 줄이고 규제 완화해야” 지적

《인천시는 최근 1500억 원이 들어 있는 시 정기예금을 해약했다. 정부의 조기 집행 방침에 따라 각종 관급공사의 발주 기간을 줄이고 선급금 비율도 높였지만 이를 충당할 돈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지방세가 목표치보다 2000억 원 이상 덜 걷혀 정기예금을 해약해 유동자금을 마련했다”며 “지금 형편에서는 지방채 발행 규모도 늘려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대대적인 재정 조기 집행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지난달 말 현재 지방자치단체 전체 예산액(210조6115억 원) 가운데 조기 집행액은 10.2%(21조4039억 원)로 정부가 기대한 속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경기 위축으로 세입이 감소한 데다 국고보조금과 교부세도 빨리 지원받지 못해 “쓸 돈도 없다”고 아우성이다. 또 각종 규제로 발목이 잡혀 조기 집행이 쉽지 않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 지자체마다 자금 부족

인천시는 다른 시도보다 2개월여 앞서 조기 집행에 나서면서 자금이 거의 바닥난 상태다. 올 상반기까지 조기 집행할 예산은 약 8조1000억 원. 1월 말 현재 1조7374억 원이 이미 지출됐다.

이달부터 대대적으로 공사가 발주돼 자금난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 위축에 따라 취득세와 등록세 등 세입이 예년에 비해 50% 이상 줄어들었고 국고지원금도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전시의 경우 올해 책정된 예산 2조4353억 원 가운데 60%인 1조4611억 원이 조기 집행 대상이다. 공사와 자치구까지 포함하면 2조7000억 원대다. 대전시는 5700억 원을 지방교부세 등 중앙정부 재원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말까지 시에 내려온 돈은 이 중 13%에 불과하다.

강원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예년 이맘때 같으면 가용자금이 4000억 원 정도였지만 이달 초 현재 10억 원 이하까지 떨어졌다. 강원도는 5일자로 금고은행을 통해 500억 원을 긴급 차입해 사용하고 있다.

강원도 관계자는 “예산의 75%가 국고보조금과 교부세고 나머지가 자체 수입”이라며 “조기 집행을 빨리 하려면 보조금과 교부세를 앞당겨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11일 현재 지방교부세 집행액은 전체 27조6000억 원 가운데 4조6170억 원(16.7%) 정도다.

○ 발목 잡는 규제

경기 의정부시는 반환된 미군 공여지에 광역행정타운을 건설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올해 912억 원의 예산을 세웠다. 그러나 국방부가 공여지의 토양오염을 치유한 뒤 의정부시에 땅을 넘기게 돼 있다. 현재로는 언제 토양 오염 치유가 끝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라 조기 집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부산 강서구청은 총사업비 14억 원 규모의 강서구 녹산동 연안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곳이 철새 도래지라는 이유로 2월까지는 착공할 수 없다. 실제로 이곳에는 철새가 서식하지 않기 때문에 조기 공사가 가능하다는 것이 강서구청의 얘기다. 불필요한 허가 조건 때문에 조기 집행의 발이 묶인 셈이다.

농촌의 경우 농업 관련 지원금이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문제가 됐던 쌀 직불금이다. 그러나 직불금의 지급은 연말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농촌지역 실물경제에 도움을 못 주고 있다.

경북도는 “법을 고쳐서라도 상반기에 지급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아직까지 별 진전이 없다.

○ “지원 늘리고 기준 완화해야”

정부는 매일 조기집행률을 점검하면서 지자체들을 독려하고 있지만 일방적인 정책 추진으로 곳곳에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미 지자체에서는 “조기 집행 목표가 너무 높다”며 기준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조기 집행 과정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과실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아예 ‘특별 훈령’ 제정을 추진 중이다. 공무원들의 법적 책임을 일정 부분 덜어주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별도의 조례로 만들 경우 의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50일 이상 걸리기 때문에 훈령으로 대체해 기간을 단축하기로 했다.

재정 여건이 열악한 지자체에 대한 지원 강화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북도의 경우 이자수익이 지난해 153억 원에서 올해 50억 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경남도도 연간 이자수익이 300억 원이지만 올해는 정기예금의 해약이나 예금 기간의 단축 등으로 10%인 30억 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경남도 관계자는 “정부가 상반기에 60%를 집행하도록 재촉하지만 지난 3년 평균 집행비율을 보면 53%에 달해 큰 차이가 없다”며 “조기 집행이라는 부담 때문에 시군과 실과에서 봇물 터지듯 예산 배정을 요구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예산 조기 집행이 지연되면서 일자리 창출 등 서민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원=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전국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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