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편지 보낸 단칸방 모녀 직접 만나보니…

  • 입력 2009년 2월 6일 02시 59분


“식당일 끊겨 구청 찾았더니 봉고차 있다고 지원금 퇴짜”

11세 딸, 엄마 걱정돼 청와대에 편지

李대통령 ‘129 상담원’ 변신해 통화

“신빈곤층 사각지대 찾아내 지원하라”

지난달 16일 인천 남동구 구월2동의 한 연립주택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 김모(11) 양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매일 철야 기도를 드리며 일자리와 집 문제로 우는 엄마 때문에 너무 마음이 아파서 대통령 할아버지께 편지를 쓰게 됐어요.”

‘대통령 할아버지께’로 시작하는 4장 분량의 편지에는 김 양의 가정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 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 김 양은 ‘운전을 잘하는 엄마에게 일자리가 생겨 더는 엄마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 소원’이라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5일 경기 안양시의 보건복지종합상담센터인 129콜센터를 방문해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김 양 편지의 사연을 소개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내가 들은 바로는 이들 모녀가 같이 사는데 헌 봉고차(승합차)가 집에 한 대 있어서 그것 때문에 기초수급대상자가 안 된다고 하고 모자보호법 대상도 안 된다고 한다”며 “봉고차가 10년 이상 지나야 해당이 된다고 하는데 이는 허점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곤 “신빈곤층의 사각지대가 많은 것 같다”며 이에 대한 대책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일일 상담원’으로 이 초등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날 오후 김 양이 사는 인천의 지하 단칸방.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김 양은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반찬은 김치 한 가지뿐이었고, 물에 밥을 말아 먹고 있었다.

무릎관절염을 앓고 있는 김 양의 어머니 김옥례(52) 씨가 철제 앵글에 매트리스를 깔아 만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에는 그 흔한 컴퓨터도 한 대 없었다.

김 씨는 “월세를 5개월째 내지 못해 집주인이 방을 2월까지 비우라고 했다”며 “경기가 좋지 않아 일자리가 없어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정용 난방유를 팔던 남편과 함께 전북 남원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려오던 김 씨는 2003년 4월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이혼했다. 채권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리던 김 씨는 법원에 개인파산 신청을 한 뒤 다섯 살짜리 딸을 데리고 친구가 사는 인천으로 옮겨왔다.

다행히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보증금 200만 원을 빌려줘 월세 22만 원짜리 반지하 단칸방을 얻었다.

이때부터 김 씨는 건축공사장과 식당 허드렛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8월 정부가 생활비와 학비 등을 지원하는 ‘한부모 가족’ 프로그램을 신청하려고 남동구청을 찾았지만 한숨을 쉬고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김 씨가 교회 신도를 실어 나르기 위해 구입한 1999년형 그레이스 승합차(2000cc)가 10년이 되지 않았고, 생계유지가 아니라 자원봉사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이유로 탈락시켰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자 김 양은 지난달 용기를 내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김 양이 보낸 편지 때문인지 이달 4일 구청의 사회복지담당 직원이 쌀 1포대와 라면 1상자를 들고 김 씨 집을 찾아왔다. 이 직원은 “김 씨가 승합차를 처분하면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하는 것은 물론 임대주택 신청과 자활사업 등을 통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김 씨는 5일 승합차를 75만 원에 팔고 말았다. 김 씨의 유일한 희망인 딸은 공부를 잘한다. 지난해 학교에서 치른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모든 과목 만점을 받았다.

책을 사줄 형편이 되지 않아 주로 이웃에 사는 상급생 언니가 쓰던 참고서와 문제집을 얻어 보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보지만 좀처럼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김 양은 “사실 지난해 5월에도 촛불시위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을 대통령께 위로 편지를 보내 답장을 받은 적이 있다”며 “제 사연을 끝까지 읽어 주신 대통령 할아버지께 조만간 감사 편지를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양에게 어머니가 일자리를 갖게 되면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환한 미소와 함께 이렇게 대답했다.

“자장면과 통닭을 실컷 먹어보고 싶어요∼.”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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