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대통령의 목사들

  • 입력 2008년 8월 29일 19시 52분


지구촌에서는 종교로 인한 분쟁과 테러가 그칠 날이 없다. 종교로 인한 전쟁은 보스니아 내전처럼 민족청소 강간센터 고문 같은 추악한 폭력을 동반한다. 이라크에서는 이슬람교 안에서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려 폭탄테러로 살육전을 벌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전통을 유지했다. 천주교 정진석 추기경은 올해 부처님 오신 날에 “이 세상이 부처가 설파한 자비가 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조계종 총무원은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성탄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아기 예수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건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 들어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전통이던 종교 간 화평이 깨지고 있어 걱정스럽다. 개신교 신자였던 이승만 김영삼 대통령 때도 불교계가 이렇게 들끓었던 적은 없었다. 지역갈등에다 종교 대립까지 일어난다면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악성 종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헌법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 그리고 종교의 평등을 선언하고 있다.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은 첫째, 국교(國敎)를 부인한다. 둘째, 국가에 의한 종교 활동이 금지된다. 셋째, 국가에 의한 특정 종교의 우대 또는 차별이 금지된다(장영수 ‘헌법학’). 공직자들이 이러한 종교적 중립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면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어떤 종교를 신봉하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종교 대립, 지역갈등보다 악성

지난 대선에서 여론조사 분석가들은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여간해서 내려가지 않는 이유의 하나로 개신교 표심을 거론했다. 정치는 종교적으로 중립이어야 하지만 종교는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에서 찬송가와 기도 소리가 들리게 해 달라’는 개신교 신자들의 소망은 성취됐다. 그런데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개신교의 신심(信心)이 대통령 취임 후 국정과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종교의 평등을 해치게 된다.

시중에서는 이 대통령이 다녔던 소망교회 인맥을 빗댄 ‘소망 대망(大望)’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 한나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나 청와대 비서관 중에 개신교 인맥에 줄을 대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대통령과 가까운 목사들에 관한 이야기는 근거 없는 괴담 수준으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구체성을 띠고 있다. 정부의 종교 편향에 반발하는 민심이 악화되면 불교계는 물론이고 세속의 비(非)신자들까지도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개신교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목사와 신도들도 이 대통령이 모든 종교인들로부터 고루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이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한다.

개신교 케이블 TV에서 만담식 설교로 인기를 끄는 장경동 목사가 석가모니와 스님들을 모독하는 설교를 해 파문을 일으켰다. 불교계를 격앙시킨 그의 설교 내용을 일일이 논박할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못산다’는 주장은 사실과도 배치된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개신교)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비롯해 몇 권의 저작을 통해 근면 성실 정직 같은 개신교 윤리와 신도들 사이의 결속력은 유럽과 미국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가져오는 데 기여했다고 논증(論證)했다. 그러나 종교적 문화가 경제발전에 필요한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수학 과학을 존중하는 합리주의, 교육제도, 법체계, 정치 지도자의 의지, 정부 행정과 기업가 정신 같은 요소가 경제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에서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1∼2%에 불과하고, 신도(神道)와 불교 신자가 대부분이지만 세계 제2위 경제대국이다. 가톨릭 국가 중에서도 남미 국가들은 가난하지만, 아일랜드는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같은 종교인들끼리의 결속력이 도를 넘어서면 다른 종교와 비(非)신자에 대한 배타성으로 연결되기 쉽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그 신앙체계를 존중하는 것이 곧 내가 믿는 신앙을 약화시키는 일은 아니다.

他종교에 대한 배타성 버려야

미국의 신학자 폴 니터는 종교의 관계가 ‘적자생존’에서 ‘협력자생존’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억압, 경제적 불의, 도덕적 쇠퇴, 생태계 파괴 등 인류가 당면한 위기 앞에서 모든 종교가 독선적 아집이나 환상에서 벗어나 난국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 산수가 아름다운 사찰마다 정부의 종교 편향을 규탄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6만(경찰 추산) 불자가 서울에서 집회를 연 것은 유사 이래 처음이다. 불심(佛心)이 화가 나 있다는 뜻이다. 불교계는 분명한 의사표시를 한 만큼 정부가 종교적 중립을 실천하는지 지켜보면서 청정도량(淸淨道場)의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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