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과 경쟁관계인 공기업들 우선 대상으로 분류
매각 어려운 한전 자회사 등 일부는 제외될 수도
전문가 “사회합의 우선… 서두르면 과거실패 반복”
‘공공개혁은 공기업을 민간에 매각하는 게 우선. 인력 감축 등 조율이 필요한 구조조정 작업은 좀 미뤄도 된다.’
정부가 마련한 공공기관 개혁방안은 이 같은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권 초기 공기업을 민간에 매각하는 모습을 보여야 공공부문 전반의 구조조정에 속도를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도 “일부 공기업이 공공성을 명분으로 개혁을 늦추려 한다”며 “단기간에 비공개로 민영화 작업을 추진해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민영화에 속도를 붙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지역난방공사 가스공사 우선 민영화
현행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은 공공기관이 자체 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얼마인지에 따라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하고 있다.
재정부는 이 중 자체 수입 비중이 50% 이상으로 높아 민간 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24개 공기업과 한국전력 자회사를 민영화 대상으로 분류해 왔다.
이런 기준에 따라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가스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도로공사, 부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 한국관광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 9개 공기업과 한전 산하 2개 공기업 등이 민영화 대상으로 꼽힌 것이다.
한전 자회사 중 남동발전, 중부발전 등은 덩치가 너무 큰 데다 수익성이 떨어져 시장에서 팔기가 쉽지 않고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이 떨어질 수 있어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핵심 민영화 대상인 발전자회사를 제외하면 민영화의 효과가 반감될 것이란 지적도 있어 앞으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공부문 개혁 작업은 1998년 이후 추진돼 온 공공부문 개혁의 연장선상에 있다. 김대중 정부는 한전 발전자회사 등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노동조합의 반발과 공익성 훼손 등 반대 여론을 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공기업 민영화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이명박 정부는 민영화를 빨리 진행하기 위해 반대 여론을 잠재울 안전장치를 미리 마련한 점이 과거 정부와 다르다.
예컨대 고속도로 노선을 쪼갠 뒤 노선별 경영권을 각각 민영화함에 따라 노선 사업자 간 경쟁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했다. 요금 인하를 유도하는 장치인 셈.
공청회 같은 사전 의견 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소모적 논쟁을 줄이기 위한 것이지만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번 민영화와 구조조정으로 공공기관 전반의 효율성이 높아져 궁극적으로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전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은 지난해 매출액이 3215억 원에 이르렀지만 당기순이익은 176억 원으로 매출액 대비 순이익 비율이 5.5%였다. 나쁘지 않은 성적표지만 발전설계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익성이 낮은 편. 민영화를 통해 민간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순이익을 늘리는 한편 설계 품질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 “서두르면 과거 실패 반복”
최근처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불안한 상황에서 민영화에 따른 전력 가스 상수도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오르는 부작용도 걸림돌로 지적된다.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공공요금이 시장 논리에 따라 결정되면 사업자들이 원가 인상분을 전기 가스 상수도 등 각종 공공요금에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에너지시장 자유화로 전력요금 인하를 기대했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전력요금이 각각 39%, 30%씩 오르는 등 전력업체들이 도매가격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공공부문 개혁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를 바탕으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과거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공공기관 민영화 매물이 시장에 한꺼번에 쏟아지면 매각 대금이 낮아져 공공기관을 헐값에 매각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매각 시기 등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식경제부의 한 당국자는 “민영화의 기본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이 든다”며 “신중론을 제기하면 민영화 반대론자로 몰리는 분위기여서 함부로 얘기하지 못하는 처지”라고 전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민영화를 해 본 경험이 적은 만큼 중기적 과제라는 관점에서 제도적 틀을 갖추면서 끈기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