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앞서 민영화부터” 공공개혁 드라이브

  • 입력 2008년 5월 13일 02시 59분


■ 민영화 의미-방향

민간과 경쟁관계인 공기업들 우선 대상으로 분류

매각 어려운 한전 자회사 등 일부는 제외될 수도

전문가 “사회합의 우선… 서두르면 과거실패 반복”

‘공공개혁은 공기업을 민간에 매각하는 게 우선. 인력 감축 등 조율이 필요한 구조조정 작업은 좀 미뤄도 된다.’

정부가 마련한 공공기관 개혁방안은 이 같은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권 초기 공기업을 민간에 매각하는 모습을 보여야 공공부문 전반의 구조조정에 속도를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도 “일부 공기업이 공공성을 명분으로 개혁을 늦추려 한다”며 “단기간에 비공개로 민영화 작업을 추진해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민영화에 속도를 붙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지역난방공사 가스공사 우선 민영화

현행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은 공공기관이 자체 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얼마인지에 따라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하고 있다.

재정부는 이 중 자체 수입 비중이 50% 이상으로 높아 민간 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24개 공기업과 한국전력 자회사를 민영화 대상으로 분류해 왔다.

이런 기준에 따라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가스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도로공사, 부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 한국관광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 9개 공기업과 한전 산하 2개 공기업 등이 민영화 대상으로 꼽힌 것이다.

한전 자회사 중 남동발전, 중부발전 등은 덩치가 너무 큰 데다 수익성이 떨어져 시장에서 팔기가 쉽지 않고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이 떨어질 수 있어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핵심 민영화 대상인 발전자회사를 제외하면 민영화의 효과가 반감될 것이란 지적도 있어 앞으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공부문 개혁 작업은 1998년 이후 추진돼 온 공공부문 개혁의 연장선상에 있다. 김대중 정부는 한전 발전자회사 등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노동조합의 반발과 공익성 훼손 등 반대 여론을 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공기업 민영화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이명박 정부는 민영화를 빨리 진행하기 위해 반대 여론을 잠재울 안전장치를 미리 마련한 점이 과거 정부와 다르다.

예컨대 고속도로 노선을 쪼갠 뒤 노선별 경영권을 각각 민영화함에 따라 노선 사업자 간 경쟁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했다. 요금 인하를 유도하는 장치인 셈.

공청회 같은 사전 의견 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소모적 논쟁을 줄이기 위한 것이지만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 공공기관 효율성 높여 경제성장 도모

청와대와 정부는 이번 민영화와 구조조정으로 공공기관 전반의 효율성이 높아져 궁극적으로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전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은 지난해 매출액이 3215억 원에 이르렀지만 당기순이익은 176억 원으로 매출액 대비 순이익 비율이 5.5%였다. 나쁘지 않은 성적표지만 발전설계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익성이 낮은 편. 민영화를 통해 민간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순이익을 늘리는 한편 설계 품질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 “서두르면 과거 실패 반복”

최근처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불안한 상황에서 민영화에 따른 전력 가스 상수도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오르는 부작용도 걸림돌로 지적된다.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공공요금이 시장 논리에 따라 결정되면 사업자들이 원가 인상분을 전기 가스 상수도 등 각종 공공요금에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에너지시장 자유화로 전력요금 인하를 기대했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전력요금이 각각 39%, 30%씩 오르는 등 전력업체들이 도매가격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공공부문 개혁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를 바탕으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과거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공공기관 민영화 매물이 시장에 한꺼번에 쏟아지면 매각 대금이 낮아져 공공기관을 헐값에 매각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매각 시기 등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식경제부의 한 당국자는 “민영화의 기본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이 든다”며 “신중론을 제기하면 민영화 반대론자로 몰리는 분위기여서 함부로 얘기하지 못하는 처지”라고 전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민영화를 해 본 경험이 적은 만큼 중기적 과제라는 관점에서 제도적 틀을 갖추면서 끈기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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