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반 위기감에 당내 권력투쟁까지 가세

  • 입력 2008년 3월 24일 03시 00분


한나라당 총선 공천을 놓고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23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는 선거를 준비하기 위한 종합상황실이 마련됐다. 연합뉴스
한나라당 총선 공천을 놓고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23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는 선거를 준비하기 위한 종합상황실이 마련됐다. 연합뉴스
■ ‘공천 갈등’ 폭발… 어수선한 한나라

18대 총선 후보 등록을 이틀 앞둔 23일 오후 한나라당은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일대 혼란에 빠져들었다.

당 공천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표가 “속았다”며 당 지도부의 책임론을 거론하자마자 친(親)이명박계로 분류되는 총선 출마자 20여 명이 당사에 나타나 “원칙과 기준을 상실한 당 공천에 대해 청와대와 당 지도부는 대국민 사과를 하라”고 촉구했다.

강재섭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여당 현직 대표의 총선 불출마 선언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그만큼 당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겉으로는 당이 공천 문제를 둘러싼 이해관계 갈등으로 홍역을 치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총선에서의 과반 의석 위기감에다 당내 권력투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집단행동 동참자 중 상당수는 수도권 출마자들로서 “이대로 가다간 총선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 지역 민심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불출마 요구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요구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자신의 당락 여부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것.

계파를 불문하고 당 전체가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상황의 이면에는 총선 이후 당권 경쟁, 나아가 대권에 대한 포석까지 내다본 당내 권력투쟁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총선 이후 강 대표와 박 전 대표, 이재오 의원, 정몽준 최고위원이 당권과 대권을 놓고 경쟁하는 4강 구도로 전개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이들 간에 물고 물리는 싸움이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당내에서는 강 대표와 이 의원이 불출마할 경우 7월로 예정된 당 대표 최고위원 선거의 향배가 크게 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그동안 7월 당권 선거에서 이재오 의원이 제일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가운데 이 부의장 등 당내 중진그룹과 친박근혜계, 친강재섭계가 이를 견제하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해석이 많았다.

물론 이들이 불출마하더라도 당권에 도전할 수는 있지만 원외에서의 당권 도전은 쉽지 않다는 게 당내 상당수의 의견이다.

이 의원이 불출마할 경우 공천 물갈이를 통해서 이미 친이명박계 중진 의원들이 대부분 낙천했기 때문에 친이계 대표로 당권에 도전할 인물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서울 동작을에서 정 최고위원이 통합민주당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에게 승리할 경우 6선이 되는 정 최고위원이 친이계를 대표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릴 것으로 전망된다.

김무성 최고위원의 낙천 이후 당권에 도전할 구심점이 약해진 친박근혜계 현역 의원들도 친이계가 구심점 없이 분화될 경우 힘을 모아 당권에 도전할 수 있다.

친이명박계 내부에서도 이 부의장과 이재오 의원의 셈법이 달라 분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집단행동에 나선 출마자 중 이 의원과 가까운 사람이 상당수 포진한 것을 두고 이 부의장 측의 독주를 막기 위한 범계파 내 파워게임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단 물귀신 작전으로 같이 불출마를 한 뒤 총선 후 회생을 도모하는 것이 혼자 불출마하는 것보다는 덜 위험하다는 판단을 했음 직하다.

26일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이들이 불출마를 선언할 경우 해당 지역구에 차기 후보를 빨리 결정해야 한다.

공천심사위원회를 거쳐야 하겠지만 이들은 자신과 가까운 후보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려 할 가능성이 크다. 정 최고위원이 서울 동작을에 전략공천 되면서 원래 지역구인 울산 동구에 지역 사무소 사무국장이던 안효대 씨가 공천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이들이 불출마 결단에 따른 희생의 의미를 더욱 빛내기 위해서는 자파에 지역구를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강 대표와 이 의원이 이번 총선은 불출마하더라도 재·보궐선거를 통해서 원내 재진입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당내 해석이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경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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