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대통령, 국무회의 중시를 권한다

  • 입력 2008년 3월 11일 02시 54분


프랑스의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엘리제궁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전 9시 30분에 국무회의가 개의된다. 언제나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다. 외유나 질병 등 특별한 사정으로 대통령이 주재하지 못한 사례는 헌법교과서에도 예시된다. 장방형 원탁의 중앙에 대통령과 총리가 마주 보며 앉고 나머지 국무위원들이 차례로 자리 잡는다. 필자가 엘리제궁을 방문했을 때 자그마한 국무회의실의 목제 테이블은 세워져 있었다. 회의 때만 펼쳐 놓는다고 한다.

우리 헌법상 국무회의는 대통령이 의장이고 국무총리가 부의장이며 15인 이상 30인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구성되는 정부의 최고정책심의기구이다. 그간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국무회의는 예외적이고 국무총리가 대신 주재하는 정부중앙청사 국무회의가 오히려 일상화됐다. 이는 대통령이 헌법상 책무를 외면한 결과다. 또한 각 부처 장관을 겸하는 국무위원은 자신의 부처 소관 이외의 문제에는 가급적 언급을 자제하는 미덕을 발휘했다. 이제 헌법상 대한민국 정책의 수립, 심의, 결정, 집행의 심장부인 국무회의부터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첫째, 권위적인 국무회의장의 모습부터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대통령은 가운데 자리에 큰 의자를 차지해 앉고 국무총리는 대통령 옆 구석에 자리했다. TV 화면에 비친 국무위원들은 대통령의 말씀을 초등학생처럼 필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마치 황제 앞에 엎드려 도열한 군신들을 연상케 한다. 국무회의가 대통령의 일방적인 지시사항만 전달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관료적이고 고압적인 분위기로는 토론하고 일하는 국무회의가 될 수 없다. 이런 구조로는 링컨 대통령이 적시한 바와 같이 “7인이 반대하고 한 사람이 찬성하더라도 한 사람의 의사가 다른 사람의 의사를 압도한다”는 19세기적인 모습만 연출될 뿐이다. 이 상태로는 정부의 정책강령을 공동으로 수행하고 집단적 연대적으로 책임을 담보해야 하는 오늘날의 국정운영 모델에 어울리지 않는다. 새 정부의 장방형 원탁회의장은 변화의 단초를 제공한다. 내친김에 더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다.

둘째, 헌법기관인 대통령이 스스로 국무회의 주재를 포기함으로써 국정운영이 막료 중심으로 작동될 위험을 드러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접 주재했을 뿐 다른 전직 대통령들은 국무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월 1, 2회만 주재하겠다고 하니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사소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매주 화요일 오전 9시 30분에 열리는 정례 국무회의는 지켜져야 한다. 비상사태가 아닌 한 정례회의는 정규 근무시간에 열려야 한다.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지 않고 장관들의 독대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대통령수석비서관들로부터는 수시로 업무보고를 받는다. 그만큼 헌법상 공식 기구는 외면한 채 막료 중심의 정치를 해 왔다는 증좌다.

셋째, 토론이 활성화돼야 한다. 프랑스에서도 국무회의에서의 토론 부재가 비판의 대상이다. 주요 정책사안에 관해 전 국무위원이 발언 기회를 갖는 테이블 돌아가기(tour de table)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진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무위원 전원이 차례로 발언한 경우는 노태우 정부에서 설을 부활시켜 이중과세를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 조회가 유일하다. 그만큼 국무회의는 통과의례적인 기구로 전락했다. 진지하고 밀도 있는 토론을 위해 국무위원 수를 줄이는 것은 옳다. 많은 배석자도 필요 없다. 국무회의는 부처를 담당하는 장관들의 회의체가 아니라 국정을 책임진 국무위원들의 일하는 장소여야 한다.

헌법상 최고정책심의기관인 국무회의가 새 정부의 명실상부한 국정의 심장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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