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D-30]“억울한 1명 있지만 국민 눈엔 그게 그거”

  • 입력 2008년 3월 10일 02시 59분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은 9일 “어머니 말씀을 되새기며 공천심사를 한다”며 두 번이나 눈물을 보였다. 안철민 기자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은 9일 “어머니 말씀을 되새기며 공천심사를 한다”며 두 번이나 눈물을 보였다. 안철민 기자
■ 민주당 공천혁명 주도 박재승 공심위장

통합민주당 ‘공천 혁명’의 중심에 서 있는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은 9일 두 번이나 눈물을 훔쳤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민주당사에서 1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1990년대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다른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라’는 가르침을 거론할 때 눈시울이 붉어졌다. 말문을 잇지 못하고 손마디가 떨렸다. 구시대 정치 관행과 결별하기 위해 칼을 벼리고 있는 그의 현재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곧바로 ‘당규대로 진행하면 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당 최고위원회의가 7일 1차 공천심사 결과를 보류한 것을 두고 “당규에 따라 공심위 결정을 최고위원회의가 (따로 판단할 것 없이) 원안대로 확정하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또 “비례대표 및 수도권 전략 공천 역시 당규에 ‘당 대표와 공심위원장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돼 있다. 손학규 박상천 대표와 내가 (협의가 아니라) 합의한 뒤에야 후보를 뽑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가 1차 심사 결과를 보류했다. 공천자 이름만 제공받았다며 불만이다.

“혼자서 출마를 신청한 62개 지역에 대한 공천 결과였다. 뻔한 결과가 나올 곳이었다. 그런데도 최고위가 그렇게 표현한 이유는 짐작하면 알 거다. 공심위 결정에 흠이 있다기보다 늦춰서 발표하는 게 (선거 전략상) 낫다고 봤다.”

―의원 여론조사 결과도 공심위원 12명 가운데 박 위원장만 봤다며 불만인데….

“보안 때문이었다. 여론조사 결과를 나만 봤는데도, 벌써 숫자가 새 나가면서 혼선이 생긴다. 원한다면 당 지도부에 보여줄 수 있지만, 그 혼란은 어떻게 하겠나.”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은 전력자 11명 배제 원칙을 분명히 했지만 1명은 억울하다고 했다.

“(A 씨 이름을 거론한 뒤) 그 사람은 정말 억울할 수 있겠다. 하지만 국민의 눈에 볼 때 그게 그거다.”

박 위원장은 이어 “A 씨가 내 말을 근거로 재심 신청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실명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11명 배제 결정 이후 일부는 재심 요청도 했다.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반론이 있지만 동의 못한다. 국회의원 같은 높은 자리는 책임을 지겠다는 자리여야 한다. 장군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부하에게만 나서라고 하면 되겠나. 자기가 앞장서야 한다. 당내에 이들을 구제하자는 목소리가 있어 왔지만, 이젠 내게 그런 목소리 안 들린다. 주변에서도 목소리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몇몇 정치인 배제 결정도 중요하지만, 민주당의 앞날이라고 선보일 신인 발굴도 중요한데….

“대선 패배 과정에서 당이 국민의 마음을 잃었다. 공천 신청을 마감했으니 갑자기 폭넓게 신청받기는 어렵다. 다만, 몇몇 괜찮은 사람을 영입하고 있다고 들었다. 또 공천심사 면접 과정에서 썩 괜찮은 답변을 내놓아 욕심이 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당선 가능성에서 한계가 있다. 신인도 좀 있고, 기존 인물 가운데 평판이 좋은 분들도 좀 있다.”

이 대목에서 박 위원장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그리샴의 법칙도 거론했다. 그는 “왜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의 혐오 행동이 더 커지는지 모르겠다. 몸싸움하고 악 쓴다. 친구들과 그리샴의 법칙 이야기를 많이 했다. 기성 정치인들이 정치 신인들의 정치 진입을 막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해 봤다”는 말도 했다.

―정치권이나 공직 제의를 받은 적이 있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이던 시절 민주당에서 지역구 출마 권유도 받았다. 변호사 업무에 보람을 느끼던 시절이어서 거절했다.”

―공천심사를 시작한 지 보름 가까이 됐다. 하루도 쉬지 않고 있는데 체력을 어떻게 유지하나.

“2001년 우연히 시작한 달리기를 아직도 한다. 오늘 아침에도 1시간을 걷고 나왔다. 2002년 봄 동아국제마라톤에 출전해 4시간 25분에 풀코스를 뛰었다. 오래전부터 달리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많이 했고, 상상 속에서지만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마라톤이 나에겐 ‘마더(Mother)톤’이다.”

―어머니에게 받은 영향이라면….

그는 인터뷰 전반에 나온 이 질문을 듣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좀 있다가 이야기하자”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나 인터뷰 말미에 비슷한 질문을 받은 뒤 눈물을 닦아가며 겨우 말문을 이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늘 염두에 두라고 하셨다. 공천심사 때도 이 생각을 자주 한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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