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국정원 3차장 “北 핵위기 대응은 선군외교 전략”

  • 입력 2008년 3월 3일 03시 00분


북한이 1993년과 2002년에 시작된 1, 2차 핵 위기에 대응하는 데 사용한 외교 및 협상 전략을 ‘선군(先軍) 외교’로 개념화할 수 있으며 북한은 6가지의 대응 전략과 4가지 협상 방식을 거의 유사하게 반복해 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훈 국가정보원 3차장(북한 담당)은 1월 동국대 대학원 북한학과에 낸 북한학 박사학위 논문 ‘북한의 선군 외교 연구-약소국의 대미 강압외교 관점에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조율한 북한 전문가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1989년 11월 이후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자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과 대치해야 하는 비대칭적인 안보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대미 협상과 핵을 수단으로 한 선군 외교를 발전시켜 왔다. 이는 약소국이 강대국을 압박하는 ‘강압 외교’의 드문 사례라는 것.

이 논문에 따르면 북한은 악명(惡名) 유지→모호성 유지→벼랑 끝 대치→맞대응→위기관리→협상이라는 여섯 가지 전략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왔다. 협상에서는 북-미 양자협상→포괄적 일괄타결→근본문제 카드 활용→단계별 동시 행동 등 네 가지 방식을 되풀이했다.

예를 들어 북한은 2005년 9·19합의 후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사건을 들고 나오자 ‘악의 축’이라는 악명과 핵 보유 여부 등에 대한 모호성을 유지하다 2006년 미사일 발사(7월)와 핵 실험 강행(10월)으로 벼랑 끝 대치를 했다. 국제사회의 압력에 대해 ‘연이은 물리적 조치’ 등 성명으로 맞대응했다.

그러나 같은 해 중국 및 러시아 방문 외교(10월) 및 북-미 베를린 양자 접촉(12월)을 통해 위기 관리에 나서 6자회담에 복귀했다. 2007년 2·13합의에 이르기까지의 협상 과정에서는 네 가지 협상 방식이 그대로 나타났다는 것.

서 차장은 “북한은 1차 핵 위기 해결을 위해 위 과정을 두 차례, 2차 위기에서는 세 차례 되풀이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군 외교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피(被)포위 의식’에서 나왔고 주변국의 군비 경쟁을 부채질하는 등 부작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선군 외교:

북한이 탈냉전의 외교적 고립 상황에 직면해 외교 정책 전반에서는 대미 외교를 중심으로 하고 대미 외교에서는 핵, 미사일 등 비대칭 강압 수단을 활용하는 외교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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