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종구]속좁은 北,정치목적 털고 스포츠 룰 따라야

  • 입력 2008년 2월 28일 02시 55분


“공화국에서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연주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반도기와 아리랑을 써야 한다.”

성조기가 걸리고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진 가운데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에서 첫 공연을 한 26일 개성에서는 북한이 한국을 철저히 무시했다. 3월 26일 열리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평양경기와 관련한 제2차 남북 축구실무회담에서 “태극기와 애국가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1차 회담 때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뉴욕 필하모닉이 평양에서 연주하는 마당에 대승적인 차원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라 서로 국기와 국가를 인정하고 경기를 하자”는 한국의 주장에 대해 북한은 “우리는 한민족이 아닌가. 왜 굳이 갈등을 조장하려고 하느냐”고 맞받았다. 고승환 대한축구협회 대외협력국장은 “지침을 받고 나온 사람들이라 말이 통하지 않았다. 향후 남북 교류의 시금석으로 생각하고 절대 밀릴 수 없다는 의지가 엿보였다”고 말했다.

친선 경기라면 한반도기와 아리랑을 사용해도 문제는 없다. 남북이 합의해 단일팀으로 국제경기에 나갈 때 ‘우리는 하나’임을 보여 주는 상징으로 한반도기와 아리랑을 써 왔다. 하지만 월드컵 예선은 FIFA 주관 대회다. 양국 국기와 국가를 연주하는 게 원칙이다.

한국은 1948년에 FIFA 회원국이 됐다. 북한은 10년 뒤인 1958년에 가입했다. 남북은 최소한 스포츠에서만은 서로 다른 회원국임을 인정하고 그동안 국제 무대에서 맞붙어 왔다. 게다가 한국은 국내에서 열린 각종 스포츠 행사 때 네 번이나 북한의 인공기와 국가를 쓰도록 허용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행태에 대해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처음 열리는 남북 회담에서 향후 주도권을 잡겠다는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의 방침은 단호하다. 태극기와 애국가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국민도 “절대 양보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훨씬 많다. FIFA는 원칙을 따를 것이다.

아무쪼록 북한이 남북 축구 대결을 순수한 스포츠 행사로 받아들여 주기 바란다.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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