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카스트로, 1990년 소련 붕괴 후 경제위기 때 다른 길…

  • 입력 2008년 2월 21일 03시 00분


19일(현지 시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여성 두 명이 퇴진을 발표한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얼굴이 붙어 있는 벽 게시물을 바라보고 있다. 아바나=로이터 연합뉴스
19일(현지 시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여성 두 명이 퇴진을 발표한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얼굴이 붙어 있는 벽 게시물을 바라보고 있다. 아바나=로이터 연합뉴스
성장률 12.5% vs -1.1%… 개혁이 운명 갈랐다

카스트로, 시장 과감히 열고 달러벌이 나서

김정일, 核-측근정치 매달리다 ‘고난의 행군’

《지난해 11월 기자가 쿠바의 수도 아바나 시를 방문했을 때 혁명광장 주변에서는 쿠바인들의 외국인 상대 달러벌이가 한창이었다. 한쪽에서는 요란한 그림이 그려진 1950, 60년대 승용차의 주인들이 외국인들을 상대로 택시 영업을 했다. 다른 쪽에서는 신형 중국제 관광버스들이 단체 관광객을 쏟아냈다. 광장 어디에도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의 얼굴이나 동상은 없었다. 다만 내무부 건물에 설치된 유명한 체 게바라의 얼굴 구조물만 눈에 들어왔다. 꼭 한 주 전 평양을 일곱 번째 방문했을 때 북측 안내원은 늘 그랬듯이 일행을 만수대 위 김일성 주석 동상 앞으로 안내했다. 과거처럼 일행이 경건하게 머리를 숙이기 원하는 북측과 이를 거부하는 남측 인사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사회주의 쿠바를 49년 동안 철권 통치한 피델 카스트로가 24일 권좌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그러나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직 그에게 보고 배울 점이 많다. 최고지도자를 우상처럼 숭배하지 않도록 한 점도 그중 한 가지다.

북한과 쿠바는 1990년 소련 등 소비에트 블록 국가들이 붕괴하자 똑같은 경제위기에 처했다. 카스트로는 과감한 개혁과 개방을 통해 역설적으로 사회주의를 지켜냈지만 김 위원장은 미숙한 대응으로 일관하다 수십만, 수백만 명이 굶어죽는 아사(餓死)를 초래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는지를 보면 두 지도자와 두 체제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2008년의 북한은 과거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1990년대 경제위기와 쿠바 북한의 엇갈린 대응=소련의 지원이 줄어들자 1990년 이후 두 나라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카스트로는 경제가 위기임을 국민에게 솔직히 시인했다. 그는 1989년부터 경제가 어려워질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위기를 ‘특별한 시기’로 명명했다. 1991년에는 대소 경제의존 실태를 국민에게 상세하게 발표하고 함께 대응책을 마련했다.

최고지도자의 고백 덕분에 쿠바는 권력 엘리트 및 인민 대중의 동의 아래 과감한 개혁과 개방을 단행할 수 있었다. 쿠바는 1991년부터 외국인 관광과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1993년과 1994년에는 시장의 재도입과 자영업 허용, 내국인 달러 보유 허용 등의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쿠바 경제는 1994년부터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쿠바와 다른 길을 갔다. 실권자인 김 위원장은 1992년까지 미국, 일본, 한국 등과의 관계 개선 및 제1차 핵 위기를 통해 경제난을 해소하려 했다. 이에 실패한 북한 지도부가 경제위기를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은 1993년 12월이었다.

북한도 나진선봉경제특구 도입과 무역자유화 등 부분적인 개방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쿠바와 같은 시장 지향적 개혁 조치를 단행하지 못했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자연재해가 겹치자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로 빠져들었다. 북한은 더욱 심해진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아직 핵과 씨름하고 있다.

북한이 왜 1990년대 초반 쿠바처럼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안보딜레마’ 가설이 가장 일반적이다. 쿠바와 달리 북한은 남한과 대치하고 있어 개혁에 따른 체제 붕괴의 불안감이 더 컸다는 것이다.

鴉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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