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입구’ 드러났지만 ‘출구’는 여전히 베일 속에

  • 입력 2007년 11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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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대선자금 새 ‘뇌관’ 부상

2002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노무현 대통령이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해 사용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검찰은 2004년 5월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해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823억2000만 원이고, 민주당이 모금한 불법 대선자금은 113억8700만 원이라고 밝혔다. 이후 한나라당은 24억7000만 원이, 민주당은 6억 원이 추가로 밝혀졌다.

그러나 국민의 의혹을 다 풀어 주지는 못했다. 사실상 최고 책임자였던 이 전 총재와 노 대통령을 입건하지 않고 수사를 종결했다. 또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한 부분에 대해 수사를 하긴 했지만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밝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를 두고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 측은 이 전 총재의 불법 대선자금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이 전 총재를 압박하고 있다.

▽대선자금 어디로 갔나=당시 검찰은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중 580억여 원은 중앙당과 지구당, 시도지부, 다른 당에서 입당한 의원 지원과 사조직 관리 등에 사용했으며 대선 이후에 26억 원을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앙당과 지구당 등이 누구의 책임하에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른바 ‘출구’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방호 사무총장이 최병렬 전 대표의 수첩을 거론하며 대선 잔금 가운데 의혹이 많다고 한 것도 밝혀지지 않은 ‘출구조사’를 겨냥한 것이다. 자체적으로 돈의 용처를 파악한 최 전 대표가 수사가 한창이던 2003년 말 사석에서 ‘조사해 보니 엄청난 내용이 있더라. 이게 밝혀지면 모두가 다 죽는다. 이 전 총재가 감옥에 가면 해결된다’는 취지로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선 잔금의 규모와 용처=검찰은 대선 잔금은 154억 원이며 이 가운데 138억 원은 기업에 다시 돌려주고 16억 원은 당에 남겨놨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용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 측은 대선 잔금이 검찰 발표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대선 잔금의 용처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 총장이 이 전 총재 측을 향해 “대선 잔금과 관련돼 의혹이 있다. 용처를 밝히라”고 공세를 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후보 측은 이 전 총재가 불법적인 대선자금 사용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전 총재 측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맞서고 있다.

▽난무하는 각종 설(說)=8일 오후 3시 28분 한나라당 대변인행정실은 출입기자들에게 ‘금일 오후 3시 40분 이두아 변호사 대선자금 관련 기자간담회’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정작 이 변호사는 이명박 후보의 인권특보로 임명돼 인사차 기자실에 들렀다며 “불법 대선자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대선자금 중 잔금 의혹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 전 총재 측의 2002년 불법 대선자금 모금 과정에 관여했던 서정우 변호사의 변론을 맡았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안팎에선 이 변호사의 ‘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날 경우 이 전 총재의 대선 가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의 ‘해프닝성’ 기자간담회 이후 당 안팎에서는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해 여러 가지 ‘설(說)’이 나오기 시작했다.

각종 설 가운데 가장 많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모종의 거래설’이다. 한 당직자는 “이 전 총재가 당시 구속된 서정우 변호사의 사면 등을 위해 정권과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설은 ‘이 전 총재 친인척의 대선자금 사용설’이다. 다른 당직자는 “이 전 총재 친인척들이 대선 잔금을 사용했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총재 측 이용관 대변인행정실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대선자금에 대해서는 남은 자금 중 15억 원을 당에 내는 등 모두 투명하게 처리했다”고 말했다.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전말=2003년 8월 ‘SK 비자금 사건’에서 시작돼 2004년 5월까지 9개월 동안 이어진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한국판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로 불릴 정도로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한나라당에서는 김영일 전 사무총장과 이회창 전 총재의 최측근이던 서정우 변호사가 구속됐다. 여당 측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안희정 씨와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 등이 잇따라 구속돼 검찰이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기도 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긴 이른바 ‘입당파’ 의원들에게 지원된 자금을 추적해 8명을 기소했을 뿐 나머지 돈의 용처 파악은 대부분 관계자들의 진술에 의존했다. 한때 검찰은 한나라당 227개 지구당에 지원된 자금 전체를 추적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물리적 한계’와 한나라당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측을 합쳐 1000억 원에 가까운 불법 대선자금이 확인됐지만 검찰은 양 캠프의 최고 책임자인 이 전 총재와 노 대통령은 입건하지 않았다. 이 전 총재는 모금 과정에 직접 공모한 단서가 없고, 노 대통령은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검찰이 정치적인 고려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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