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말 한국-대만 지도자 닮은꼴…美·대만 교수 기고

  • 입력 2007년 10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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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직무수행 지지도, 언론에 대한 적대적 태도, 경솔한 언행, 혼란스러운 경제정책과 대외정책, 측근 비리…. 각각 올해 12월과 내년 3월 대선을 치르고 물러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의 임기 말 상황이 판에 박은 듯 비슷하다. 두 정권의 실패를 독선적인 성격 등 두 지도자의 개인 성향에 빗댄 분석은 이미 종종 나왔다. 그러나 데이비드 강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와 황민화(黃旻華) 국립대만대 교수는 파이스턴 이코노믹리뷰 10월호 공동기고문에서 두 사람의 유사성을 ‘아웃사이더 정권의 혼란’에서 찾았다. 점진적 민주화의 길을 걸어온 두 나라에서 처음 아웃사이더 정권이 등장하면서 일찌감치 혼란은 예정됐다는 분석이다. 다음은 두 사람의 기고문 주요 내용.》

▽점진적 민주화 사회의 첫 아웃사이더 정권=두 지도자의 정치 성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집권 당시에 처한 정치상황을 분석해야 한다.

한국과 대만 모두 경제성장과 정치안정이라는 조건 아래 민주화가 일어났다. 따라서 국민들은 정치적 자유화를 요구하면서도 권위주의 시절의 경제모델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같은 정치상황 아래 양국은 정치적 합의에 의한 ‘점진적 민주화’의 길을 걸었다. 민주화 이후 첫 선거에서 각각 노태우 전 대통령과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이라는 권위주의 정권 계승자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실질적인 첫 정권교체는 대만의 2000년 총통선거와 한국의 2002년 대선을 통해 이뤄졌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 시절 확보한 정치적 자산을 통해 ‘지역 맹주’로 군림했으므로 이들의 집권은 명확한 의미의 정권교체로 보기 어려웠다.

변화와 개혁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두 나라는 결국 정치 기반이 취약했던 ‘아웃사이더’ 노 대통령과 천 총통을 지도자로 선택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권위주의 시대의 정치세력과 관료, 재벌 등 경제발전세력이 상당한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었다는 것을, 또한 변화를 원하는 국민조차 급진적인 개혁은 원치 않았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고려했어야 했다.

▽타협보다 독선적 운영으로 갈등 초래=노 대통령과 천 총통의 인생사는 여러 가지로 비슷하다.

둘 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사법시험에 합격한 자수성가형 인물이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인권변호사로 민주화운동에 투신해 명성을 쌓았다. 정계 입문 뒤에도 수차례 당선과 낙선을 번갈아하며 쓴잔을 마셨다. 불리한 상황을 딛고 대선에서 승리한 것도 비슷하다.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집권 초기 두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컸다. 이 때문인지 두 지도자는 정권을 잡은 뒤 자신들이 변화의 신성한 과제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

‘점진적 민주화’라는 양국의 정치구도 아래서는 기존 세력과의 타협과 통합을 통해 점진적 개혁을 추진해야 했다. 그러나 두 지도자는 자신들의 주장에 확신을 갖고 ‘변화’에만 초점을 뒀다.

이들은 민주화 동지, 시민단체, 지방세력 등 아웃사이더들을 대거 권력 핵심에 기용했다. 이들의 정치적 경험 부족은 곧 ‘변덕스러운 정책’으로 이어졌다. 권위주의 정권을 비판하면서 끊임없이 적을 만들고 도덕적 정당성을 강조했다.

외교정책에서도 실리보다는 민족적 자존심만을 내세웠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의 변화를 시도하며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걸었고 민족공조를 강조했다. 대만도 ‘대만 독립’과 ‘유엔 독자가입’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졌다.

결국 독선적인 국정운영과 경솔한 언행으로 지지층이 이반하기 시작했다. 둘 다 탄핵 위기(노 대통령 2004년, 천 총통 2006년)를 겪기도 했다. 측근 비리와 기강 해이로 도덕적 정당성에도 타격을 받았다. 결국 지난해 한때 지지율은 각각 10%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급락했다.

결국 두 아웃사이더는 정권은 잡았지만 어떻게 국가를 통치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폭넓은 협력을 이끌어낼지를 알지 못한 결과 혼란을 겪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양국의 민주주의는 험난하기만 할까. 여기에 대한 답은 낙관적이다.

정권교체 과정을 겪으면서 국민이 ‘민주화만이 능사가 아니다’는 것을 깨달았고 지도자의 카리스마에 의거한 대중정치보다 정치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두 나라에서는 이념에 기초한 진정한 정당정치가 차츰 뿌리를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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