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vs 15%대… 대선후보 빅2 지지율 기현상

  • 입력 2007년 10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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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의 지지율이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지지율 1위로 올라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1년 이상 선두를 지키고 있다. 9월 이후에는 지지율 50%대를 유지하고 있다. 역대 대선에서 지지율 50%대를 기록한 후보는 없었다. 반면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경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15% 안팎의 지지율에 머물고 있다. 단일화 변수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범여권 주자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30%가 채 안 되는 이상한 상황이다. 왜 이 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지, 앞으로 예상되는 상황은, 또 변화 요인이 있다면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 본다.》

이명박, 전례없는 50%대 지지율… 1년 넘게 1위

2007년 대통령 선거를 불과 2개월여 앞둔 17일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의 지지율은 50% 이상이다. 지난 1년여 동안 지지율 1위 자리를 뺏긴 적도 없다. 지지율만을 놓고 볼 때 역대 대선 사상 전무한 일이다.

여론조사만 보면 그의 당선은 거의 확실해 보이지만 승리를 장담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이명박의 경쟁력과 대안 부재=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 후보의 높은 지지율이 1년여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원인을 그의 경쟁력과 대안 부재에서 찾았다.

허춘호 엠비존씨엔씨 대표는 “이번 대선의 핵심 이슈가 경제인 상황에서 이 후보의 브랜드 파워가 세고 그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가장 큰 원인은 이 후보가 유권자들이 원하는 바를 갖췄다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안 부재와 ‘반(反)노무현’ 정서도 이 후보의 지지율 고공 행진에 한몫하는 원인으로 꼽혔다.

이상일 TNS 부장은 “이 후보의 지지율 고공 행진은 대안 부재가 1차 원인인 것 같다. 노무현 정부에 염증을 느끼던 시기에 이 후보는 서울시장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성과물을 내놓으면서 지지율 상승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지지층 충성도는 높은 편=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 후보 지지층의 충성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1년 넘게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게 그 증거라는 설명이다.

한 전문가는 “이 후보는 경선 기간 최저 35% 안팎의 지지율을 유지했다. 많은 지지자가 1년째 이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지지율 출렁거릴까=향후 이 후보의 지지율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정 의원은 “과거 선거와 달리 지금은 20, 30대의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고 이 후보가 영남만이 아니라 수도권도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다”며 “정치 지형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뒤집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 전문가는 “범여권 자체의 능력만으로는 이 추세를 꺾기에 역부족”이라면서도 “그러나 이 후보의 재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거나 언행에서 큰 실수를 할 경우에는 지지율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정동영, 경선 승리 후도 지지율 14~17%… 제1당 후보론 이례적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대선후보는 후보로 확정된 직후의 지지율이 14∼17%대로 나타나고 있다.

후보로 선출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조사한 기관 수도 적어 후보 선출 효과가 정확하게 반영된 지지율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역대 대선과 비교해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된 직후 여권 또는 원내 제1당의 후보 지지율로는 이례적으로 낮다.

2002년 4월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40%대를 기록하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앞섰다.

1997년 7월 한나라당 경선 직전까지 이회창 후보는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에게 뒤지는 것으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조사됐다. 그러나 그달 21일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된 직후 이 후보의 지지율은 40%대로 김 후보를 10∼15%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후보의 낮은 지지율은 일단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의 흥행 실패가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정치컨설팅업체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지지율은 지지 기반을 지켜야 나오는데 한나라당은 이를 지킨 반면 호남권은 무너졌다”며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진보 개혁 세력이 별다른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코리아리서치센터 김정혜 상무는 “경선에서 패배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 이해찬 전 국무총리 지지층이 아직 정 후보 쪽으로 완전히 흡수되지 않은 것 같다”며 “아직 단정적으로 말할 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관건은 정 후보가 ‘마의 20%대’를 넘느냐에 있다고 본다. 20%를 넘길 경우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과 함께 지지율이 상승세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1997년 이회창 지지율 10%대 급락땐 ‘후보 교체론’ 모락모락

2002년 노무현 지지율 10%대 머물자 ‘후보 단일화’ 당내 압력

1997년 15대 대선은 여당인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 제1야당인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의 3파전으로 치러졌다.

신한국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회창 후보가 8월부터 아들의 병역면제를 둘러싼 야권의 ‘병풍(兵風)’ 공세에 시달리며 지지율이 10%대로 곤두박질치자 ‘후보 교체론’이 대두되면서 신한국당 경선에서 2위를 한 이인제 전 경기지사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 전 지사가 탈당 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직후 실시된 한 여론 조사에서는 이 후보의 지지율이 18.3%로 떨어져 29.9%의 김 후보, 21.7%의 이 전 지사에 이어 3위로 밀렸다.

하지만 대선을 한 달여 앞둔 11월 중순 이 후보가 지지율을 역전시키며 2위로 올라섰고 이 전 지사의 지지율은 10%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이 후보는 지지율을 30%대 초반까지 끌어올렸지만 결국 김 총재에게 39만 표 차로 패배했다.

2002년 대선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와 대선에 재도전하는 한나라당 이 후보,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각축을 벌였다.

그해 4월 민주당 경선에서 대선후보가 된 노 후보는 한때 40%대의 지지율로 이 후보를 앞서기도 했지만 8월 이후 지지율이 10%대에 머물자 당내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가 결성돼 노 후보를 흔들기도 했다. 하지만 대선 20여 일을 앞두고 정 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한 노 후보는 지지율을 40%대까지 끌어올려 결국 57만 표 차로 대통령이 됐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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