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언론인 ‘김정일 가상 비밀일기’ WP기고 화제

  • 입력 2007년 10월 1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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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핵 한 방 터뜨리니 세계가 문 두드려

核폐기? 한번더 약속한다고 손해볼것 없지”

영국 아시아위클리 발행인인 재스퍼 베커 씨가 14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가상 비밀일기 형식으로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김 위원장의 최근 행보와 의도를 분석했다.

베커 씨는 “김 위원장이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고 있는지는 그의 비밀일기가 세상에 공개됐을 때에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요즘 김 위원장이 쓰고 있을 일기’를 가상해 봤다. 그는 2005년 ‘불량정권-김정일과 북한의 위협’이라는 책을 낸 바 있다.

다음은 가상일기 요약.

2007년 10월 10일. 간밤에 에네시(코냑)를 너무 많이 마셨나. 아직도 머리가 욱신거린다. 어제는 핵보유국 데뷔 1주년. 당시 국방위원들은 모두 너무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한 방 터뜨리니 모두 문을 두드리더군. 지난주엔 노무현 대통령이 왔지만 핵실험에 대해선 입도 열지 않았지. 러시아, 중국, 유럽연합(EU) 지도자들도 나를 보러 평양으로 몰려왔고.

4년 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을 축출했을 땐 상황이 안 좋았지. 다음엔 내 차례라는 생각이 들어 몇 달간 바짝 엎드려 있어야 했지. 지하터널을 따라 대피 벙커로 이리저리 옮겨 다녔어. 하지만 양키 놈들이 이라크에서 죽을 쑤면서 이젠 압력도 사라졌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을 추방하고 핵개발로 위협하자 유엔이 벌벌 떨었지. 그런데 나 대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난하더군. 그러니 미국 대통령이 나를 찾을 수밖에 없지. 이제 부시 또는 힐러리 클린턴이 평양에 올지도 모르지.

조만간 제국주의자들은 적대적 태도를 철회하고 우리를 외교적으로 인정하는 한편 다시는 공격 위협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거야. 내 왕조는 더 안전해지겠지. 마카오 돈도 풀렸고 중유도 받았고…. 이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만 빼주면 세계은행과 다른 국제기구에서 돈을 빌릴 수 있겠군.

그 비결? 그건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야. 우리가 그동안 몇 번이나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겠다고 말해 왔나. 1986년, 1990년, 1992년, 1994년, 2004년, 2006년. 올해 한 번 더 약속한다고 손해날 것 없지.

미국은 지금 공화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할 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라고? 우리에게 준 식량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숨겨 둔 다른 핵무기는 물론 생화학무기, 중·장거리 미사일의 존재도 알 리 없지.

정말 웃기는 일은 남측이 내가 모든 것을 내줄 것으로 믿고 있다는 거지. 내가 일생을 바쳐 가난한 공화국을 군사강국으로 만들었는데 하찮은 은행 차관, 쓸모없는 조약을 위해 이걸 포기하겠는가.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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